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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 엘리자베스 1세

GoodFortune 2023. 6. 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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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의 황금시대를 펼친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포스팅해보겠다.

 

이전 포스팅 튜더 왕조 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의 가계도에 대해서 간단하게 다뤄봤다.

튜더 왕조의 헨리 7세 헨리 8세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고, 여기서는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본다.

 

 

잉글랜드 튜더 왕조 헨리7세 헨리8세 엘리자베스1세

튜더 왕조는 1485년부터 1603년 근대 전기 시대를 말한다. 튜더 왕조는 헨리 튜더로 부터 시작된다. 헨리 7세 1457~1509 재위 1485~1509 웨일스 가문의 후예인 오웬 튜더가 하급 귀족으로 전락하여 헨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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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 왕조 1485년부터 1603년까지 잉글랜드를 다스렸다. 

이전의 왕조를 보면 플랜태저넷 왕조(1154~1399) - 랭커스터 왕조(1399~1461) - 요크 왕조(1461~1485) 순서이다.

랭커스터 왕조와 요크 왕조의 혈통이 끊어지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방계 후손인 마거릿 보퍼트의 아들인 헨리 튜더는 요크 왕가 리처드 3세와 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왕위에 오르게 된다. 리처드 3세는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를 폐위시키고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마거릿 보퍼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에드워드 3세의 넷째아들 곤트의 존의 손자이다)

헨리 튜더는 요크 왕가 에드워드 4세(재위 1461~1483)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여 정통성을 강화하며 튜더 왕조를 열며 헨리 7세에 올랐다.

 

 

헨리 7세의 아들 헨리 8세는 세 부인에게서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6세를 낳았다. 당시 헨리 8세는 이혼이 금지되어 있던 카톨릭교에 불만을 삼고 영국 국교를 성공회로 바꾸고 캐서린과 이혼을 했다.

헨리 8세의 총 6번의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첫 부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딸 메리를 낳았고 둘째 부인 앤 에게서 엘리자베스, 세번째 부인 제인에게서 에드워드 6세를 낳았다. 위에 링크 걸어놓은 헨리 8세의 왕비들에 대해서는 잉글랜드 튜더 왕조 포스팅을 참고하기 바란다.

에드워드 6세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16살의 어린 나이에 죽게 되며 헨리 8세의 두 딸은 여왕의 자리에 차례로 오르게 된다. 

헨리 8세의 첫 딸 메리는 어머니 캐서린의 명예회복을 위해 어머니의 종교였던 로마 가톨릭교를 부활시켰다. 이 때 수많은 신교도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며 '피의 메리'라고 불린다.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 남편 필립 2세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는데 실패하며 이후 왕위는 헨리 8세의 두번째 딸 엘리자베스에게로 이어졌다.

왼쪽 그림은 엘리자베스 1세의 10대 시절이다.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재위 1558~1603)는 45년간 잉글랜드의 여왕 자리를 지키며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앤 불린은 첫번째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다. 헨리 8세는 앤 불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불륜, 이단 등의 혐의로 결혼 3년만에 사형당했다. 메리 여왕 시절 엘리자베스는 죄수로 몰려 런던 탑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메리 여왕이 병으로 죽은 후 헨리 8세의 유일한 후계자가 된 엘리자베스는 25살의 나이에 여왕에 올랐다. 메리 여왕의 개신교 탄압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성공회 신자인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에 환호했고 엘리자베스 1세는 성공회를 국교로 확립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자신을 기념하여 버지니아(처녀 여왕)라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스페인 격파를 기념하는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는 45년의 여왕시절을 보내고 떠났다. 후대의 영국인들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은 빛나는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잉글랜드 해군은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를 격파해 바다의 패권을 가져왔으며 영국의 왕권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 배우자나 자녀가 없이 떠나며 제임스 1세가 왕위를 이었다.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외동딸로 생후 6일만에 제임스 5세가 사망하였기에 갓난아이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6세와 메리를 혼인시켜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시키고자 하였으나 스코틀랜드 섭정이었던 메리의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프랑스 왕세자 프랑수아와 메리를 혼인시켰다. 메리는 프랑스 왕실에서 자랐고 섭정 마리 드 기즈가 스코틀랜드를 다스렸다.  프랑수아 2세가 프랑스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 1년 6개월만에 후사 없이 사망하고 동생인 샤를 9세가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까지 사망하자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귀국했다.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메리는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와 두번쨰 결혼을 했다. 헨리 스튜어트는 스튜어트 왕조의 분가 출신이며 헨리 7세의 후손이기도 했기에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었다. 헨리 스튜어트와 메리 1세가 둘 다 헨리 7세의 후손이었기에 제임스 6세는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잉글랜드 제임스 1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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