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그리스의 마지막 왕가 글뤽스부르크 가문

GoodFortune 2022. 9. 29. 09:41
반응형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왕가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이다.

줄여서 글뤽스부르크 왕가라고 부르며 덴마크 왕, 그리스 왕, 노르웨이 왕, 아이슬란드 왕을 배출한 가문이다.

 

 

요르요스 1세

1845~1913 재위 1863~1913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세의 차남이다. 크리스티안 9세는 덴마크의 국왕 프레데리크 7세가 아들이 없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크리스티안 9세와 부인 루이세는 6촌 지간으로 양쪽 모두 덴마크 왕실의 피가 있었다) 크리스티안 9세의 3남 3녀에서 장남 프레데리크 8세는 덴마크 국왕, 장녀 알렉산드라는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왕비, 차남 요르요스 1세는 그리스 국왕, 차녀 다그마르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가 되어 많은 유럽 군주들이 크리스티안 9세의 후손들이다.

그리스 국왕 오톤이 1862년 10월 폐위되자 1863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에 의해 그리스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요르요스의 덴마크식 이름은 빌헬름 게오르크였는데 게오르크를 그리스어 한 요르요스 1세로 왕위에 올랐다. 덴마크 국교 루터교를 믿었지만 그리스 왕으로 즉위한 후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다. 

즉위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였다. 1984년 이오니아 제도, 1881년 테살리아, 1912년 마케도니아와 이피로스, 1913년 크리티섬을 획등하는 등 그리스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그리스 영토를 늘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자"는 발언을 하여 주변 국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896년 아테네에서 제 1회 올림픽을 개최하여 첫 근대 올림픽의 개회선언을 하기도 하였다.

1913년 테살로니키에서 불가리아 비밀결사 단원에게 암살당했다.

 

 

콘스탄티노스 1세

1868~1923 재위 1913~1917 1920~1922

 

요르요스 1세와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의 아들이다. 어머니 올가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며 콘스탄틴 대공의 딸이다. 1882년 그리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겨 1886년 졸업 후 그리스 군 장교로 복무하였고, 이후 독일 황실 근위대에서 근무했다. 후에 아들 요르요스도 독일로 보내 군사훈련을 받게 했다. 1889년 독일 프리드리히 3세의 딸 소피아 공주와 결혼하였다. 둘 사이의 자녀는 3남 3녀이다.

1897년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그리스 군대 총사령관이었으나 참패하였고, 그 여파로 국왕의 인기가 하락하고 왕정 반대파 목소리가 강해졌다. 1912~13년 발칸 전쟁에서는 테살로니키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테살로니키에서 아버지 요르요스 1세가 살해당하였고, 콘스탄티노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콘스탄티노스 1세는 그리스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놓고 국무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와 불화를 빚어 그를 두번이나 사임하게 했다. 1917년 영국-프랑스 군대가 아테네를 위협하면서 왕위에서 폐위되었으며 반독일 감정이 나타나 독일에서 훈련을 받은 요르요스 대신 차남 알렉산드로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그는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1920년 알렉산드로스가 원숭이에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베니젤로스는 1920년 선거에서 패하였고 콘스탄티노스가 복위하게 된다.

1919~22년 크리스-터키전쟁에서 그리스가 패하면서 콘스탄티노스 1세는 또다시 폐위되어 이탈리아로 망명하였고 1923년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사망했다. 왕비 소피아는 귀국하려 하였으나 허가가 되지 않아 독일 푸랑크푸르트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로스 

1893~1920 재위 1917~1920

 

콘스탄티노스 1세와 프로이센의 소피아의 차남이다. 1917년 콘스탄티노스 1세가 국무 총리 베니젤로스와 외교 정책 문제로 갈등을 빋으며 폐위되었다. 왕세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형 요르요스는 아버지와 함께 망명하였고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올랐다. 실권은 국무총리 베니젤로스에게 있었다.

1919년 아스파시아 마노스와 결혼해 딸 한명을 두었고, 이듬해 1920년 원숭이 두마리에 물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왕위는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에게 돌아갔다.

 

콘스탄티노스 1세 - 파블로스 - 콘스탄티노스 2세

 

요르요스 2세

1890~1947 재위 1922~1924 1935~1947

 

콘스탄티노스 1세와 프로이센의 소피아의 장남이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1908년 발칸 전쟁에 참전했다. 1917년 국무총리 베니젤로스와 콘스탄티노스 1세와의 충돌에서 콘스탄티노스 1세가 퇴위되며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1920년 아버지 복위로 그리스로 돌아와 1921년 루마니아 공주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1919~1922년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하면서 콘스탄티노스 1세가 또다시 폐위되며 요르요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차 대전에 대해 왕실에 대한 국민 반감이 높아지며 1923년 10월 혁명위원회가 요르요스 2세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그는 거부했지만 쿠데타가 일어나며 1924년 3월 25일 공화정을 선언했다. 요르요스 2세는 그리스 국적을 박탈당하고 재산도 몰수되어 부인의 나라인 루마니아로 망명했다.

1935년 요르요스 콘딜리스는 공화정부를 전복시키고 스스로 총리로 올라 왕정을 복위시켰다. 당시 투표로 98% 가 군주제 회복을 지지했고 요르요스 2세는 왕위로 돌아왔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1941년 독일이 그리스를 침공하며 독일에 점령되자 또다시 망명을 강요받아 영국으로 갔다가 1946년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갑자기 사망했고 동생 파블로스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파블로스 1세

1901~1964 재위 1947~1964

 

콘스탄티노스 1세와 프로이센의 소피아의 세번째 아들이다.

1917년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1923년, 1941년 요르요스 2세가 망명할 때 역시 함께 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그리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대부분 런던과 카이로에서 지냈다.

1938년 브라운슈바이크 출신 프리데리케 공주와 결혼해 소피아(현재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어머니), 콘스탄티노스 2세, 이리니 공주 1남 2녀를 낳았다.

1946년 그리스로 귀국하여 이듬해 형 요르요스 2세가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1949년 공산주의 반군을 진압하고, 1950년대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출, 무역 정책을 추진했다.

1964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였으나 사망하게 된다. 

 

 

 

콘스탄티노스 2세

1940~ 재위 1964~1973

 

파블로스와 프리데리케의 아들이다. 1973년 폐위되며 그리스의 마지막 왕이되었다.

1940년 요르요스 2세 국왕 시절 태자 파블로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누나 소피아는 후안 카를로스 1세와 결혼하여 스페인 왕후를 지냈으며 현재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의 어머니이다.

콘스탄트노스 2세는 1947년 태자가 되었고, 20세에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참가해 요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1964년 파블로스 1세가 암으로 사망 후 왕위에 올랐으며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3녀 안네마리 공주와 결혼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정치대립이 심했던 기간인데 1965년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심해져 시위가 벌어졌고, 1697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사 정권을 수립했다. 콘스탄티노스 2세는 처음에는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듯 했으나 근왕파 장교들과 역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였고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했다.

1973년 국민투표에서 왕정 폐지가 결정되었고, 1975년 헌법 제정으로 그리스 제3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콘스탄티노스 2세는 해외에서 생활하며 46년의 망명생활을 보내다 2013년 귀국하였다.

3남 2녀를 두었으며 장남 파블로스는 1995년 미국인 억만장자의 딸 마리 샹탈 밀러와 결혼해 4남 1녀를 두었고, 뉴욕과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