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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실 - 베르나도트 왕가 (현재 스웨덴 칼 16세 구스타프 가계도)

GoodFortune 2022. 10. 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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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현재 왕가인 베르나도트 왕조는 칼 14세 요한으로부터 시작된다.

칼 14세 요한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프랑스인이었다. 쿠데타로 칼 13세가 스웨덴의 왕위에 올랐으나 노후하고 후계가 없었기에 칼 14세 요한은 스웨덴 왕위 제안을 받고 왕위 후계자가 되었다.

 

 

칼 14세 요한

1743~1844 재위 1818~1844

 

스웨덴 현재 왕가인 베르나도트 왕조의 시조이다. 프랑스 장 앙리 베르나도트와 어머니 잔느 생-장 사이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자라 프랑스 육군에 사병으로 입대하여 전공을 세우며 장교가 되었다.

1789년 마르세유 상인의 딸 데지레 클라리와 결혼하였다. 데지레는 나폴레옹 1세의 옛 약혼녀였다.

칼 14세 요한은 일게 병사에서 장군까지 올라가게 된 인물로 민중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나폴레옹의 라이벌로 주목받기도 했다.

칼 14세 요한은 나폴리옹의 쿠데타와 집권에 협조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부인 데지레는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의 처제이기도 했고, 나폴레옹은 데지레와 파혼한 후 평생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809년 스웨덴에서 쿠데타로 칼 13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많았고 후계가 없었다. 칼 14세 요한에게 스웨덴의 왕위 제의가 들어와 1810년 왕위계승권자가 되었으며 1818년 왕위에 올랐다.

왕비 데지레는 스웨덴보다는 프랑스를 그리워 했으며 남편이 즉위한 후에도 프랑스에 남아있었다. 아들 오스카르가 프랑스 황후 조세핀의 손녀와 결혼하며 스웨덴으로 왔으나 프랑스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녀의 사후 개인 문서에서는 나폴레옹과의 편지 초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내고 83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마지막 말을 '나폴레옹' 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오스카르 1세

1799~1859 재위 1844~1859

 

1810년 아버지 칼 14세가 요한이 왕세자가 되며 스웨덴으로 왔다. 1818년 아버지가 스웨덴 왕위에 오르자 노르웨이 총독이 되었다. 1823년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세핀과 결혼하여 4남 1녀를 두었다. 

 

 

칼 15세

1826~1872 재위 1859~1872

 

오스카르 1세와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세핀의 장남이다. 네덜란드의 루이제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장녀 로비사는 덴마크 프레데리크 8세와 결혼하였다. 그녀의 큰아들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이며 둘째아들은 노르웨이의 호콘 7세이다.

아들 칼 오스카르 왕자는 어려서 요절하며 왕위는 동생인 오스카르 2세에게 이어졌다.

 

 

오스카르 2세

1829~1907 재위 1872~1907 

(노르웨이 국왕 1872~1905)

 

오스카르 1세와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세핀 사이의 아들이자 칼 15세의 동생이다. 1857년 나사우의 소피아와 결혼하여 4명의 아들을 두었다.

1872년 형 칼 15세 사망 후 왕위를 이어받았다.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노르웨이 국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노르웨이는 덴마크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 호콘 7세가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스카르 2세 이후 스웨덴의 국왕들은 노르웨이의 국왕을 겸하지 않았다.

 

왼쪽 구스타프 5세 오른쪽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아기(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를 안고있는 오스카르 2세

 

 

구스타프 5세

1858~1950 재위 1907~1950

 

오스카르 2세와 나사우의 소피아의 장남이다. 1881년 바덴의 빅토리아 공주와 결혼하였다. 빅토리아의 할머니는 스웨덴의 소피아 공주이고, 소피아 공주의 아버지는 홀슈타인고트로프 왕가의 구스타프 4세 아돌프였다. 빅토리아와 구스타프 5세의 결혼으로 스웨덴 베르나도트 왕가와 홀슈타인고트로프 왕가의 연결이 이루어졌다. 빅토리아는 독일제국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조카이기도 했다.

아버지 사망으로 1907년 왕위에 올랐으며, 중세 이래 대관식을 올리지 않고 왕관을 쓰지 않은 첫 스웨덴 국왕이었다. 

92세의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43년간 스웨덴의 왕위를 지키며 두 번의 세계대전을 보냈다.

독일 출신의 왕비 빅토리아의 영향으로 구스타프 또한 친독 성향을 보였다. 1914년 구스타프 5세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 회의를 주재하여 유럽 열강들에 대해 공동 중립정책을 나타내며, 다른 유럽 국가들의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는 중립을 지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구스타프 5세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4국 회의를 소집하여 공동 중립선언을 나타냈다. 1933년 히틀러에게 유대인 탄압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1942년 유대인 학살을 담은 사진을 전달받게 되었고 구스타프 5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영국의 조지 6세에게 그 사진을 전달하게 되며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 학살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유대인 학살을 다음 최초의 사진이거나 적어도 최초의 여러 사진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빅토리아 왕비 사이에서 세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구스타프 아돌프는 왕위를 이었으며, 차남 빌헬름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데르 2세의 손녀 마리아 파블로브나와 결혼했다가 6년 후 이혼하였다. 빌헬름은 작가와 영화 제작가로 활동했다. 3남 에릭은 간질과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나 29세에 사망하였다.

그는 사망 후 하이비 사건으로 양성애자로 밝혀졌다. 1952년 소아성애 쿠르트 하이비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구스타프 5세의 연인이었다고 한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

1882~1973 재위 1950~1973

 

구스타프 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베르나도테 왕가, 어머니는 홀슈타인고트로프 왕가로 두 왕조의 혈동을 모두 물려받았다.

1905년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코넛 공녀 마거릿과 결혼하여 4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1920년 마거릿이 사망한 후 1923년 빅토리아 여왕의 외외증손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두번째 결혼하였다.

평생동안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1926년 일본강점기 조선의 경주시를 방문하여 서봉총의 발굴을 참관하기도 하였다.

아버지 구스타프 5세가 43년간 왕위에 있었기에 43년동안 왕세자 자리에 있었으며 즉위 당시 67세였다. 

마거릿 사이에서 낳은 장남 구스타프 아돌프는 비행기 사고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하여 왕위는 손자 칼 16세 구스타프에게 이어졌다. 장녀 잉리드는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9세와 결혼하여 현재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를 낳았다.

 

 

칼 16세 구스타프

1946~ 재위 1973~

 

매년 노벨상과 폴라음악상을 수여하는 스웨덴의 현재 국왕이다.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시빌라 왕자빈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톡홀름 공항 비행기 사고로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가 사망했다. 1973년 조부 사망 후 왕위에 올랐다. (내년 2023년이 되면 50주년을 맞이한다.)

1974년 헌법 개정으로 행정권, 군통수권 등의 실권은 상실하고 국민 통합의 상징이자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입헌 군주가 되었다.

1976년 뮌헨 올림픽에서 만난 브라질계 독일인 실비아 좀멀라트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장녀 빅토리아는 왕위 계승 1순위이며 장남 칼 필립, 차녀 마들렌이 있다.

장녀 빅토리아는 헬스 트레이너였던 다니엘 베스틸링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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