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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왕조 3

고구려 왕 계보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함꼐 삼국시대를 구성한 국가로 그 영토가 만주, 한반도 북부, 러시아의 연해주와 몽골 동부까지 걸친 나라로 700년 동안 존재하였다 (기원전37~668년) 5세기 장수왕 때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으나 왕건이 건국한 같은 이름의 왕조와 구분을 위해 고구려로 통칭되고 있다. 고구려 1대 주몽 동명성왕에서 28대 보장왕에 이르는 왕계보이다.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 고구려의 마지막 보장왕의 아들 안승(보덕왕)이 신라에 귀순하여 김씨성을 받았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부흥 운동은 지속되었고 671년까지 당나라에 항전하였다. 698년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며 고구려 부흥 운동은 일단락되고 고구려는 발해에 의해 계승되었다.

고구려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 평원왕 영양왕 영류왕 가계도

고구려 22대 왕인 문자명왕(491-519)은 장수왕의 손자이다. 장수왕의 아들 고추대가 조다가 장수왕보다 먼저 사망하며 손자가 왕위를 이었다. 494년 부여의 왕이 처자를 데리고 고구려에 항복하여 부여를 복속시켰고, 신라(21대 소지 마립간)와 살수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신라군이 패하여 견야성으로 들어가 농성하자 포위하였으나 백제(동성왕)가 신라에 구원군을 보내어 고구려는 후퇴하였다. 495년 백제의 치양성을 포위하였으나 신라가 군대를 보내어 다시 후퇴하였다. 신라 백제와 전투가 있었으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이어 고구려의 최대 영토를 유지하였다. 아들 둘과 딸을 두었는데 장남 고흥안은 22대 안장왕, 차남 고보연은 23대 안원왕이며 딸 안학공주는 고구려의 장군 을밀과 혼인하였다. 고구려 22대 왕 안..

고구려 왕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왕 장수왕 가계도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331-371)은 미천왕의 아들이다. 314년 왕태자에 책봉되었고, 331년 미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334년 평양성을 증축하고 335년 신성을 쌓았다. 338년 전연과 후조의 전쟁이 시작되자 후조와 내통하던 봉추, 송황 등이 망명을 요청해 그들을 받아들였다. 339년 전연이 쳐들어와 동맹을 청하였다. 342년모용황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고국원왕은 크게 패하여 환도성이 함락되고 단옹국으로 피신하였다. 고국원왕을 추격하던 전연군은 모후 주씨와 왕비를 포로로 잡았으나, 고국원왕의 동생 무의 군대를 만나 크게 패하여 퇴각했다. 전연군은 퇴각 길에 미천왕릉을 파헤쳐 미천왕의 시신을 가져갔다. 343년 고국원왕은 동생 무를 전연에 보내 부왕의 시신을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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