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는것이힘이다/고려역사 26

고려 공녀로 가서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

기황후 1315-1369 아버지는 기자오, 어머니는 이행검의 딸 이씨였다. 기식, 기철, 기원, 기주, 기륜 오빠들이 있었다. 공녀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조공의 하나로 여자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에서는 13세에서 16세까지 처녀들을 원나라에 보내야했다. 1232년부터 원나라에 공녀를 보냈는데 조선 세종 때 되서야 폐지되었다. 1232년(고종19) 몽골의 1차 침입 직후 처음 요구했으며 충렬왕 초부터 공민왕 초까지 80년 동안 기록된 것만도 50여 차례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딸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깎아 출가시키거나 어린 나이에 혼인시키기도 했다. 원에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황제, 황부, 황족들의 시녀로 들어가 힘겨운 생활을 해야했다. 간혹 중국이나 몽골의 황제의 눈에 띄어 후궁..

개혁정치를 추진한 신돈

1323(충숙왕10) - 1371(공민왕20) 귀족의 영산 신씨 대가의 서자로 태어나 승려가 되었다. 어머니는 옥천사의 사비 박씨였다. 어머니가 노비였던 탓에 천한 처지로 있어 산방을 떠도는 승려로 지냈다. 신돈은 불당을 찾는 신도를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 신자들이 감동하였다. 신돈을 보며 신승이나 문수보살의 화신인 문수 후신이라 찬미했고, 백성들은 성인이 오셨다고 찬양하였다. 신돈이 살아있는 부처라는 소문을 듣고 공민왕은 영산현까지 직접 내려가 신돈과 만났고, 신돈을 개경으로 불러들여 시국을 논한 공민왕은 신돈의 달변에 매료되었다. 신돈은 개경의 현화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1354년(공민왕3) 신돈을 왕사로 임병했으나 노비 출신의 신분이 문제가 되어 권문세족이 반발하였고, 입궐할 수 없었다. 135..

고려의 몰락 우왕 창왕 공양왕

우왕 (고려 32대 왕) 1365-1389 재위 1374-1388 창왕 (고려 33대 왕) 1380-1389 재위 1388-1389 공양왕 (고려 34대 왕) 1345-1394 재위 1389-1392 우왕은 공민왕의 서자 '모니노'이다. 공민왕은 그의 생모를 순정왕후 궁인 한씨로 포고하였는데, 생모는 신돈의 노비였던 반야라고 한다. 또한 고려서에서는 우왕을 신돈과 반야의 자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왕은 1371년(공민왕20)에 7세의 나이로 입궐하여 태후전에서 지냈다. 1374년 공민왕이 시해당하자 10세의 나이로 이인임의 후원을 받고 등위하였고, 이인임의 섭정을 받았다. 이인임은 공민왕 초에 좌부승선으로 승진했고, 공민왕 8년에 서경존무사에 임명되어 평양으로 부임하였다. 숙부 이승경과 함께 홍건적의 침..

개혁으로 시작했지만 술과 남색에 빠진 고려 공민왕

공민왕 (고려 31대 왕) 1330-1374 재위 1351-1374 공민왕은 1330년 고려 27대 왕 충숙왕과 고려 출신 공원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려 28대 왕 충혜왕의 동복동생이다. 원나라 황실 출신은아니었지만 원나라의 압력에 의해 몽골에 입조하게 되었고 1341년(충혜왕 복위2)에 원나라에 갔다. 1344년(충목왕 원년) 강릉부원대군에 봉해졌고 1349년(충정왕1) 원나라의 황족인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충혜왕에게는 아들 충목왕과 충정왕과 서자 왕석기가 있었다. 석기는 충혜왕 사후 은천옹주가 폐출되면서 처형되었고, 충목왕과 충정왕은 후사가 없었다. 충정왕의 생모인 희비 윤씨의 외척들이 덕녕공주의 섭정에 반발하고 조정을 혼란스럽게 하자 1351년 원나라 황제는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

충목왕과 충정왕 덕녕공주 섭정시대

충목왕 (고려 29대 왕) 1337-1348 재위 1344-1348 충정왕 (고려 30대 왕) 1338-1352 재위 1348-1351 충목왕은 28대 왕 충혜왕과 원나라 덕녕공주(=정순숙의공주) 사이의 장남이다. 1337년 태어나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다가 충혜왕이 사망하자 8세에 원나라에 의해 즉위하였다. 1344년부터 1348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모후인 덕녕공주가 섭정하였다. 덕녕공주가 대신 정사를 맡아보며 전조의 폐정을 시정하였다. 권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진제도감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또한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충목왕은 재위 4년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혼인도 하지 못했기에 후사가 없었다. 충목왕에게 ..

고려 충숙왕과 충혜왕, 그들의 왕비

충숙왕 (고려 27대 왕) 1294-1339 재위 1313-1330 복위 1332-1339 충혜왕 (고려 28대 왕) 1315-1344 재위 1330-1332 복위 1339-1344 충숙왕은 고려 26대 왕 충선왕과 몽골 출생 의비 야속진 사이의 차남이다. 1299년 강릉군에 봉해졌고, 세자였던 형 왕감이 죽은 후 충선왕의 후계자가 되었다.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1313년 충선왕에게 왕위를 물려받고 돌아와서 즉위하였다. 또한 1316년 충선왕은 심양왕 자리를 조카인 연안군 왕고에게 물려주었다. 왕고는 충렬왕의 장남 강양공 왕자의 아들이다. 왕고는 원나라 양왕의 딸과 혼인해 원나라 부마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충숙왕의 1비는 원나라 영왕의 딸 복국장공주 역린진팔라 였다. 1316년(충숙왕3)에 축..

고려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

충선왕 (고려 26대 왕) 1275-1325 재위 1308-1313 충선왕은 고려 25대왕 충렬왕과 원나라 공주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이다. 고려 이름 왕장, 원나라 이름은 이지르부카이다.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고 태어난 첫 혼혈왕자였다. 1275년 태어나 1277년(충렬왕3) 세자에 책봉되었고 1291년(충렬왕17) 원나라로부터 특진상주국 고려국왕세자의 호를 받았다. 충선왕의 1왕비는 원나라 진왕 카말라의 딸 계국대장공주로 이름은 보탑실린이다. 1296년 원나라에서 혼인하였다. 충선왕이 자신보다 조비를 더 총애하자 시기하였다고 한다. 2왕비는 원 출신의 후궁으로 의비 야속진이다.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나라에 자주 머물렀는데 그 때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의비 소생의 둘째 아들 충숙왕이 1294년에 태어났기 ..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의 전락 - 고려 충렬왕

충렬왕 (고려 25대 왕) 1236-1308 재위 1274-1308 고려 25대 왕 왕거는 원종과 순경왕후 김씨의 맏아들로, 원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충렬왕이다. 원종 때에 원나라에 굴복된 고려는 충렬왕부터 원나라에 충성을 한다는 의미로 '충'자로 시작하는 시호를 받게 되었다. 충렬왕 이전의 왕인 고종과 원종 또한 원나라에서 시호를 받았다. 고종은 충헌왕, 원종은 충선왕이었다. 왕의 칭호가 '종'보다 낮은 단계가 '왕'이었는데 충렬왕부터는 '종'의 시호를 받지 못하였다. 또한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는데, 충렬왕은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쿠빌라이는 칭기스칸의 손자로 1279년 남송을 정복하고 금나라와 거란족을 토벌하였으며 고려를 부마국으로 편입하고 베트남 북방까..

고려 원종편 마지막 무신정권, 원나라에 굴복

태-혜-정-광-경-성-목-현-덕-정-문-순-선-헌-숙-예-인-의-명-신-희-강-고-원 -충렬-충선-충숙-충혜-충목-충정-공민-우-창-공양 원종 (고려 24대 왕) 1219-1274 재위 1259-1274 원종은 23대 왕 고종과 안혜태후 유씨의 맏아들이다. 원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충경왕이다. 1235년(고종22) 관례를 올리고 태자에 책봉되었다. 1259년(고종46) 강화를 맺기 위해 원나라에 갔다가 그해 고종이 죽자 이듬해 귀국하여 즉위하였다. 1259년 몽고제국의 4대 칸인 몽케가 죽자 차기 후계 게승을 두고 그의 아우들인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케가 대립하였다. 당시 태자였던 원종은 쿠빌라이를 지지하였다. 쿠빌라이는 그 해에 고종이 죽자 원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얼마 후 쿠발라이는 5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