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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왕후 2

예종의 짧은 1년 3개월 후 성종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예종 1450-1469 재위 1468-1469 세조14년 (1468) 9월초 7월부터 몸이 약해진 세조는 9월이 되자 위독해졌다. 7월 19일 고령군 신숙주, 능성군 구치관, 상당군 한명회 등 정난공신, 좌익공신의 핵심 인물을 불러들여 세자 이황에게 왕위를 넘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공신들은 세조에게 곧 일어날 수 있다며 전위를 반대했다. 공신들과 세자 사이에는 합의가 이루어짐이 없었기에 공신들은 세조 사후의 체제에 대한 방안이 필요했다. 세자는 전위하지 않고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는데 고령군 신숙주, 영의정 귀성군 이준 등 대신들과 함께 정사를 논의하라고 명했다. 신숙주와 이준은 구공신과 신공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구공신은 김종서 등을 제거한 정난공신과 세조를 즉위시킨 좌익공신들이고, 신공신은 이시애..

세조 왕비 정희왕후 윤씨와 계유정난

정희왕후는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왕비이자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행한 대왕대비였다. 정희왕후의 집안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 친정아버지는 윤번은 고려 우왕 10년에 출생하였고 부인 이씨와의 사이아 3남 7녀를 두었다. 정희왕후는 아홉째였다. 파평 윤씨 집안은 여직족을 몰아내고 9성을 개척한 윤관 장군 이래로 고려의 명문거족이었고, 조선 건국시 윤호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한 공로로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사위 17명 중 4명을 파평 윤씨 가문에서 맞았다. 윤번은 음서로 벼슬길에 나아갔지만,과거에 합격하지는 못했다. 음서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조성 덕에 벼슬을 하는 것이므로 이것만으로는 주류로 행세하기 힘들었다. 윤번은 태종 때 직무를 태만히 하여 태 50대를 맞고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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