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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이힘이다/삼국시대 21

고구려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 평원왕 영양왕 영류왕 가계도

고구려 22대 왕인 문자명왕(491-519)은 장수왕의 손자이다. 장수왕의 아들 고추대가 조다가 장수왕보다 먼저 사망하며 손자가 왕위를 이었다. 494년 부여의 왕이 처자를 데리고 고구려에 항복하여 부여를 복속시켰고, 신라(21대 소지 마립간)와 살수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신라군이 패하여 견야성으로 들어가 농성하자 포위하였으나 백제(동성왕)가 신라에 구원군을 보내어 고구려는 후퇴하였다. 495년 백제의 치양성을 포위하였으나 신라가 군대를 보내어 다시 후퇴하였다. 신라 백제와 전투가 있었으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이어 고구려의 최대 영토를 유지하였다. 아들 둘과 딸을 두었는데 장남 고흥안은 22대 안장왕, 차남 고보연은 23대 안원왕이며 딸 안학공주는 고구려의 장군 을밀과 혼인하였다. 고구려 22대 왕 안..

고구려 왕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왕 장수왕 가계도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331-371)은 미천왕의 아들이다. 314년 왕태자에 책봉되었고, 331년 미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334년 평양성을 증축하고 335년 신성을 쌓았다. 338년 전연과 후조의 전쟁이 시작되자 후조와 내통하던 봉추, 송황 등이 망명을 요청해 그들을 받아들였다. 339년 전연이 쳐들어와 동맹을 청하였다. 342년모용황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고국원왕은 크게 패하여 환도성이 함락되고 단옹국으로 피신하였다. 고국원왕을 추격하던 전연군은 모후 주씨와 왕비를 포로로 잡았으나, 고국원왕의 동생 무의 군대를 만나 크게 패하여 퇴각했다. 전연군은 퇴각 길에 미천왕릉을 파헤쳐 미천왕의 시신을 가져갔다. 343년 고국원왕은 동생 무를 전연에 보내 부왕의 시신을 돌려받았다..

고구려 왕조 6대왕 태조대왕부터 15대 미천왕 가계도

고구려 6대 왕인 태조대왕(53-165)은 대무신왕의 아들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로 모친은 부여 사람이다. 태조대왕은 재위기간 93년으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로 기록되었으며, 119살에 붕어하여 한국의 군주 중 가장 오래 산 군주로 기록되었다. 태조대왕은 고구려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만든 왕으로 그 업적이 나라를 세운 것에 버금간다 하였다. 두로가 모본왕을 살해한 후 재사를 왕위에 추대하였으나 재사가 연로함을 이유로 거절하고 아들인 고궁을 추대하였다. 당시 고궁이 7살로 나이가 어려 부여태후(고재사의 부인)가 수렴청정하였다. 태조대왕이 재위했을 때 주변 소국을 정벌하여 옥저를 병합하였고, 요동군을 침략하여 영토를 확정하였다. 121년부터 동생인 수성(차대왕)에게 국정을 돌보도록 하였다. 수성이 13..

고구려 건국 주몽 동명성왕부터 5대 모본왕 고구려 왕계보

와 에서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로 천신 혹은 천신의 아들이다. 강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세 딸 유화, 훤화, 위화가 청하(압록강)의 웅심연에서 놀고 있을 때 해모수가 그 모습에 반하였고, 유화가 해모수와 만나게 되었다. 하백이 노하여 해모수를 시험해보고 유화를 하늘로 보내었으나 하백이 꾀를 써서 해모수를 다시 시험해보려 했다. 해모수는 하백의 꾀에 노하여 홀로 승천하였고, 하백은 유화를 귀양보냈다. 동부여의 금와왕이 유화를 만나고, 그 처지를 불쌍히 여겨 궁궐로 데려왔는데 햇빛이 유화를 향해 계속해서 비치더니 잉태하여 알을 낳았다. 금와왕은 이를 불길하게 여겨 알을 빼앗아 돼지우리에 던졌는데 돼지들은 알을 소중히 하였고, 소와 말에게 던져보아도 알을 피해갔다. 금와왕은 알을 도끼로 내리쳐보았으나 알은 온..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 태종무열왕 가계도

신라 29대 왕 태종무열왕(김춘추)은 아버지 김용춘과 어머니 천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용춘은 진지왕과 지도부인의 아들, 천명공주는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로 선덕여왕과 자매 사이다. 김용춘의 조부인 진지왕이 의 기록처럼 폐위되었다면 김용춘의 신분은 성골에서 족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춘추 태종무열왕은 진골 출신 왕으로 기록되었으나 김용춘의 신분이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김춘추가 진골로 기재된 까닭은 진지왕의 폐위 혹은 김춘추가 진골이자 옛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를 아내로 삼은 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용춘은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기에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였고, 그 후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에 따르면 용춘과 용수를 형제로 기록하며 용춘은 용수의 동생으로 용수가 죽은 후 ..

신라상대 진평왕 신덕여왕 진덕여왕 미실 옥진궁주 가계도

신라 26대 왕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손으로 동륜태자와 만호부인의 아들이다. 579년 숙부인 진지왕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즉위후 5년간 조모인 사도태후 박씨가 섭정하였고, 그 후 14년간 친정하였으며 598년부터 600년까지 남동생인 백반 갈문왕이 대리청정하였고, 이후 붕어하기 전까지 632년까지 친정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이 계속 되었다. 603년 고구려군이 북한산성을 침입하자 왕이 군사를 끌고 상대하여 고구려를 격파했다. 605년에는 백제를 공격하여 격퇴시켰다. 608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우명산성을 빼앗겼다. 611년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여 수 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였다. 611년 백제가 가잠성을 빼앗았고, 624년 속함성, 기잠성, 혈책성이 함락당했다..

신라 제24대 진흥왕과 제25대 진지왕 가계도

진흥왕은 15세였던 430년 신라 법흥왕의 붕어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1년간 법흥왕의 왕비인 보도태후가 섭정하였고, 이후 10년은 어머니인 지소태후가 섭정하였고, 551년부터 친정하였다. 545년 이사부의 건의에 따라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이사부는 지증왕~진흥왕 시대의 장군, 정치가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내물 이사금의 4세손이다. 삼국유사에는 그의 성을 박씨로 기록하고 있다. 553년 황룡사를 창건했고, 576년 원화 제도를 만들어 남모와 준정 두 여인으로 하여금 300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게 했으나 두 여인이 시기하다 남모가 준정에게 암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화랑을 남성 미소년으로 선발하도록 하였다. 진흥왕은 삼국 간의 항쟁을 주도하였는데, 548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

신라 상대 17대 내물 마립간부터 23대 법흥왕

아래는 신라 17대 내물 마립간부터 20대 자비 마립간까지의 가계도이다. 신라의 17대 왕 내물 마립간은 김씨의 두번째 왕으로 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의 동생 김말구의 아들이다. 부인은 미추 이사금의 딸인 보반부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미추 이사금은 284년 사망하였고, 내물 마립간의 재위기간은 356-402년으로 차이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의 왕위 계승이 계속 되어 왕권이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366년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동맹을 맺었으며 368년 근초고왕이 명마 두 필을 보내왔다. 392년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왔으며 당시 고구려 세력이 강하여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18대 왕)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399년 백제와 가야, 왜의 연합공격을 받자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요청..

신라 상대 왕조 가계도 (9대 벌휴 이사금부터 16대 흘해 이사금)

신라 상대 왕조 가계도이다. 아래 가계도는 3대~10대 석씨 왕 위주로 정리했다. 하늘색은 박씨 왕족, 주황색은 석씨 왕족을 뜻한다. 신라의 9대 왕 벌휴 이사금은 석씨 왕으로 1-3대, 5-8대에 이어진 박씨 왕조가 일시적으로 끊어지고 석씨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9대 왕 벌휴 이사금은 4대왕 탈해 이사금의 손자이자 각간 석구추의 아들이다. 이사금은 신라 왕의 칭호이며 각간은 신라 17등관등 중 1등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8대 왕 아달라 이사금이 자식이 없어 석씨에게 왕위가 갔다고 하나, 신라 박씨 선원계보에 의하면 아달라에게 아들이 있었다고도 한다.(박벽방) 10대 왕은 벌휴 이사금의 손자인 내해 이사금이 이었다. 내해 이사금의 아버지는 석이매, 어머니는 내례부인이다. 내례부인은 8대 왕 ..

신라 상대 박혁거세 거서간부터 8대 아달라 이사금까지

1대 혁거세 거서간 부터 8대 아달라 이사금까지 정리를 해보았다. 1-8대까지 4대를 제외한 왕위는 박씨로 이어졌다. 4대 왕 석탈해는 혁거세의 손녀인 아효부인의 남편이었으나 5대 파사 이사금으로 왕위가 이어지면서 석씨의 왕위는 이어지지 못했다. 8대 아달라 이사금 이후 다시 석씨인 벌휴 이사금이 9대 왕위를 이어갔다. 박혁거세는 신라 초대 국왕이다. 초대 왕의 칭호는 '거서간'이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혁거세 거서간이 백마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나 모친은 사소부인으로 알려져있다. 박혁거세는 신화에서 사로국 6부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는 회의를 하던 중 하늘에서 백마가 내려왔고 큰 알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알 안에서 사내아이가 나왔고,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으로 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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