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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65

로마 황실 역사 - 네 명 황제의 해와 플라비우스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스 왕조가 68년 네로 황제의 자살로 끝이 나며 이후 69년에는 네 명의 황제가 있었다.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네 명이 한 해에 황제를 지내며 69년은 네 명의 황제의 해로 불린다. 갈바 기원전 3~69 재위 68~69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갈바는 기원전3년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20년 법무관에 임명되었다. 23년 집정관이 되었고 39년 칼리굴라에 의해 방위군 지휘관이 되었다. 레피다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으나 갈바가 황제에 오르기 전에 사망했다. 소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기 전 자신의 재혼상대로 유부남이던 갈바에게 접근하기도 했으나 그의 장모가 공개적으로 질책하며 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갈바는 부인 레피다가 죽은 후에도 재혼을 하지 못..

로마 황실 역사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기원전 63~ 14 (재위 기원전 27~14)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불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외할머니의 남동생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유언장에 따라 그의 양자가 되어 후계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평민이었기 때문에 어머니 아티아가 귀족이었음에도 옥타비아누스는 평민층에 속하였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귀족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열어 로마를 지배하였다.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한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하게 된다. 이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오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물리치고, 로마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1952.10.7~ 이름은 블라디미르 브라디미로비치 푸틴이다. 1999년~2008년까지 제2대 대통령으로 있었으며, 2012년 부터 제4대 대통령직을 역임하고 있다. 또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러시아 총리직을 역임하여 대통령과 총리자리를 번갈아 있을 정도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러시아의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1975년 국립 레닌그라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국가보안 위원회 대외 정보 장교로 일하며 중령까지 있었다. 1991년 정치에 입문하여 1996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임기 1991.7.10~1999.12.31) 행정부에 합류했다. 옐친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고, 2000년 5월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4년..

스페인 왕실 보르본(부르봉) 왕가 가계도 (페르난도 7세 - 이사벨 2세 - 알폰소 12세 - 알폰소 13세)

페르난도 7세 1784~1833 재위 1808, 1813~1833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사이의 장남이다.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외손녀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은 대혼란 상황이었고, 쇠퇴하고 있던 스페인에서도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며 1805년 폭동이 일어났다. 1807년 페르난도는 '에스코리알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되었는데,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4세를 추방하고 페르난도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사건이었다.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아랑후에스의 반란으로 퇴위하자 아들 페르난도 7세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부자 사이를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스페인의 왕으로 자신의 형 조제프를 추대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호세 1세..

스페인 왕실 가계도 - 국왕 펠리페 6세와 그의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

현재 스페인 국왕 자리에 있는 펠리페 6세와 상왕 후안 카를로스 1세에 대해 기록해본다. 후안 카를로스 1세 (1938.1.5~) 재위 1975.11.22~2014.6.19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이 시작되며 조부 알폰소 13세 등 왕가 일족은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하였다. 아버지인 후안 데 보르본 이 바텐베르그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데 보르본 이 오를레안스 공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8년 스페인 총통이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설득으로 아버지와 함께 스페인으로 돌아와 1955년 육군에 입대한 후, 프랑코 사후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자, 후안 카를로스는 왕위에 올라 왕정복고를 실현했다. 1977년 41년 만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상하원..

스페인 왕실 보르본(부르봉) 왕가 가계도 (펠리페 5세 - 페르난도 6세 - 카를로스 3세 - 카를로스 4세)

펠리페 5세 1683~1746 재위 1700~1746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펠리페 5세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펠리페 5세의 증조모는 안 도트리슈로 카를로스 2세의 고모가 된다. 또한 펠리페 5세의 조모는 카를로스 2세의 이복남매가 되므로 펠리페 5세는 카를로스 2세의 이복조카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유럽에서는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에 오른 것이 불만이었고(프랑스-스페인 거대 제국을 우려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났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프랑스 왕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전제로 스페인의 왕위를 인정받았다. 1701년 사보이아 왕녀 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해 4명의 아이를 낳았다.(2명은 요절) 첫 부인이 죽고 1714년 파르네시오..

스페인 합스부르크(압스부르고) 왕조 가계도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영토를 갖고 있던 왕가 중 하나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하면서 유럽을 장악하였고,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스페인에서 카를로스 1세로 왕위에 오르며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시작되었다. 카를로스 1세 (신성로마 제국 카를 5세) 1500~1558 스페인 왕 재위 1516~1556 카를로스 1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으로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스페인의 국왕, 이탈리아의 군주를 지냈다. 중근세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국가의 왕관을 쓴 인물로 뽑힌다. 무려 17개의 왕관을 썼다. 어머니는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후아나 1세, 아버지는 신성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후계자인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이다. 카시트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아 다스린 ..

프랑스 브루봉 왕조 가계도

앙리 2세의 아들들,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가 모두 아들 없이 사망하며 앙리 드 부르봉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앙리 드 부르봉은 앙리 4세로 부르봉 왕가의 최초 왕이다. 앙리 4세 1553~1610 재위 1589~1610 나바라 왕 재위 1572~1610 앙리 4세는 나바라 명예왕 안토니오, 어머니는 나바라 여왕 호아나 3세이다. 앙리 4세는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호아나의 영향으로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개신교의 수뇌가 되어 프랑스의 내전을 이끌었다. 1572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나라바 왕국의 왕 헨리케 3세로 즉위했다. 같은해 프랑스 샤를 9세의 동생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결혼하였는데 마르그리트는 가톨릭 신자였다. 종교적 평화를 위한 노력이었지만 결혼 직후 터진 성 바르톨로메오 ..

프랑스 발루아 앙굴렘 왕조 가계도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의 방계로 루이 12세가 아들 없이 사망하자 그의 사위인 푸랑수아 1세가 왕위를 이으며 발루아 앙굴렘 왕조가 시작되었다. 발루아 왕조는 발루아 직계가문, 발루아-오를레앙가, 발루아=앙굴렘가 세 개의 주요 가문을 배출했다. 5명의 왕이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왕위를 지켰으며 앙리 3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며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다. 프랑수아 1세 1494~1547 재위 1515~1547 프랑수아 1세는 샤를 드 앙굴렘과 사이보아의 루이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샤를은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의 후손으로 루이 12세와 사촌이다. 루이 12세의 딸 클로드와 결혼하여 루이 12세의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프랑스는 살리카 법 때문에 여성의 왕위계승이 불가하였고, 그로 인해 프랑수아 1세가 ..

프랑스 발루아 왕조 가계도

프랑스 카페 왕조를 이은 발루아 왕조는 8명의 왕이 자리를 지켰으며 이후 프랑수아 1세를 시작으로 발루아-앙굴렘 왕조가 시작된다.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는 아들이 없었기에 후계가 문제가 되었다. 이전 포스팅의 카페 왕조 가계도를 참고해보자. 필리프 3세 - 필리프 4세 - 루이 10세 - 필리프 5세 - 샤를 4세에서 카페 왕조의 후계가 끊어졌다. 당시 후보는 3명이 있었다. 필리프 4세의 동생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 필리프 드 발루아, 샤를 4세의 누나 이자벨의 아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필리프 4세의 동생 루이 데브뢰의 아들이자 루이 10세의 사위인 필리페. 제후, 승려들의 회의를 통해 선택된 자는 필리프 드 발루아였다. 필리프 6세로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발루아 왕가의 초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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