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1926 이완용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1858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출생했고, 본관은 우봉 이씨이다. 1867년 10세에 친척인 예방승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며 양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이호준은 당대 정계의 거물로 이조참의, 승정원 동부승지, 한성부 판윤 등 최고위 관료이자 흥선대원군의 친구였다. 이완용은 이릴적 머리가 비상하고 문리를 일찍 깨쳐 집안의 주목을 받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해아할 때는 달성하려 노력했고, 꼼꼼해서 학업 성취도가 매우 빠른 편이었다 한다. 13세에 양주 조씨와 혼인하였고, 1882년(고종19) 25세의 나이로 증광별시에 문과로 급제하였고, 1886년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었다. 1886년 조선후기 한국 최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