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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중대 2

신라 신문왕 효소왕 성덕왕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가계도

신문왕(681-692)은 문무왕의 차남이며 어머니는 자의왕후 김씨다. 665년 형 소명태자가 사망하자 태자에 책봉되었다. 681년 문무왕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681년 왕비 김씨의 아버지인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고 처형되었다. 김흠돌은 김유신의 여동생 정희의 아들로,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맞아들여 권력 강화를 꿈꾸었으나 실패하였고 그의 딸도 폐위되었다. 683년 김흠운과 요석공주의 딸(신목왕후)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신문왕은 682년 국학을 설립하였고, 683년 고구려계 유이민이 세운 보덕국의 안승에게 관직과 함께 왕실의 성인 김씨 성을 하사하여 신라 귀족으로 편입시켰다. 이에 반발하여 보덕국이 지배하는 금마저에서 안승의 조카 대문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보덕국을 멸하였다. ..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 태종무열왕 가계도

신라 29대 왕 태종무열왕(김춘추)은 아버지 김용춘과 어머니 천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용춘은 진지왕과 지도부인의 아들, 천명공주는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로 선덕여왕과 자매 사이다. 김용춘의 조부인 진지왕이 의 기록처럼 폐위되었다면 김용춘의 신분은 성골에서 족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춘추 태종무열왕은 진골 출신 왕으로 기록되었으나 김용춘의 신분이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김춘추가 진골로 기재된 까닭은 진지왕의 폐위 혹은 김춘추가 진골이자 옛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를 아내로 삼은 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용춘은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기에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였고, 그 후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에 따르면 용춘과 용수를 형제로 기록하며 용춘은 용수의 동생으로 용수가 죽은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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