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1831-1863
재위 1849-1863
철종은 사도세자(장조, 장헌세자)의 아들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 광의 서자이다. 생모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
철종의 아버지인 이광은 본부인 최씨에게서 아들 회평군으로 추봉된 원경을 낳았고 첩 염씨에게서 원범을 낳았다.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은언군은 홍국영이 상계군(은언군 아들)을 정조의 후사로 추대하려던 사건과 정조 사후 부인 송씨와 며느리인 신씨가 천주교를 비밀리에 신봉하던 것이 적발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당한다. 이후 순조는 이복동생인 은언군을 살리려고 노력한 아버지 정조의 유지를 받아들여 은언군의 자녀들을 석방시키려고 노력했다. 1817년 순조는 강화도에 은언군 아들들의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순조22년(1822) 위리안치형에서 형을 감형받아 일반 백성들처럼 살수 있게 해주었고, 1830년 은언군의 자손들을 강화도에서 방면해주어 한성부로 올라와 살았다. 1831년 철종은 한성에서 출생하였다. 헌종2년(1836) 남응중 역모사건으로 그의 일족은 다시 강화도로 유배당했다. 1841년에 아버지인 이광이 죽었고, 헌종10년(1844) 이원덕, 최영희, 민진용 등이 이광의 아들 회평군을 추대하려던 민진용 옥사에 연루되어 이원경(회평군)은 18세의 나이로 사형당하였다.
이렇듯 철종은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어 왕족으로서의 예우를 박탈당하고 평민처럼 생활했다.
이원범은 농업과, 나무꾼, 행상으로 살다가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와 6월 8일 덕완군으로 책봉되다. 덕완군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로 입적하여 헌종의 뒤를 이어 6월 9일 즉위했다. 즉위 당시 19세였으며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조선왕조의 왕위 계승에서 손윗사람이 왕통을 계승한 사례는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세조가 유일하며 나머지 왕은 선왕보다 손아랫사람이었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의 경우에도 지켜졌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제사(종묘 제례)를 드릴 수 없다는 유교적 예에서 근거한 것인데, 철종은 선왕인 헌종의 손윗사람이었다. 사도세자-정조-순조-익종-헌종, 사도세자-은언군-전계대원군-철종 과 같이 헌종의 아버지 익종과 철종이 같은 항렬이었다. 이렇게 철종은 조선 왕조 왕위 계승의 기본적인 관례를 무시한 채 왕이 되었다.
당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시절로, 안동김씨인 대왕대비는 철종2년(1851)에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삼았는데 철인왕후 김씨이다. 김문근은 정권을 장악하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절정에 이르게 했다. 철종은 서출인데다가 강화도로 유배간 후 나무꾼으로 있다가 왕실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안동 김씨 세력들에 의해 왕이 되었다 하여 재위기간 중 반가에서는 그를 강화도령이라 조롱하기도 했고, 그의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학문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세도가들에 의해 모든 정사가 처리되었고, 철종은 술과 궁녀를 가까이 하며 지냈다. 철종은 안동 김씨 세력에 밀려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불우한 왕이었다.
1858년 철인왕후가 원자를 낳았으나 6개월만에 죽었다. 후궁들에게서 본 서자들도 태어나자마자 사망하였고, 서녀 영혜옹주도 14세에 사망하여 철종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철종3년(1852)부터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여 경상도 진주, 함경도 함흥, 전라도 전주 등에서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최제우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되었는데, 조정은 이를 탄압하고 교주인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처형하였다. 또한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 사상도 민중과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었다.
철종13년(1862)부터 철종은 줄곧 병석에 누워있었다. 철종은 재위 14년간 세도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33세로 병사했다.
철종의 후손들은 모두 일찍 죽어 후사가 없었기에 당시 왕실의 가장 어른인 신정왕후 조씨가 왕위를 결정하게 되어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철종이 죽기 전부터 자신의 서녀를 통해 암암리에 대비 신정왕후 조씨와 교섭하여 다음 왕위 계승권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철종의 왕위는 7촌 조카뻘이자 흥선군의 둘째 아들인 이명복이 익성군으로 봉해지고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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