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7세
1784~1833 재위 1808, 1813~1833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사이의 장남이다.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외손녀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은 대혼란 상황이었고, 쇠퇴하고 있던 스페인에서도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며 1805년 폭동이 일어났다. 1807년 페르난도는 '에스코리알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되었는데,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4세를 추방하고 페르난도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사건이었다.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아랑후에스의 반란으로 퇴위하자 아들 페르난도 7세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부자 사이를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스페인의 왕으로 자신의 형 조제프를 추대했다.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호세 1세로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스페인 독립전쟁이 진행되었고, 1814년 스페인 독립전쟁이 종식 된 후 페르난도는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아메리카 식민지 대부분이 독립하면서 스페인은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였고, 페르난도 7세는 죽기 전 살리카 법을 폐지하여 사후 왕위를 둔 분쟁을 만들었다.
네 번의 결혼을 하였으며 부인은 마리아 안토니아(나폴리와 시칠리아 출신), 마리아 이사벨(포르투갈), 마리아 요제파(작센), 마리아 크리스티나(양시칠리아) 였다. 마지막 부인에게서 두 딸을 낳았는데 장녀가 이사벨 2세이다.
이사벨 2세
1830~1904 재위 1833~1868
스페인의 첫 여왕으로 페르난도 7세와 네번째 아내이자 조카딸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딸이다. 아버지 페르난도 7세 사망 당시 3살의 나이로 여왕으로 즉위했고,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섭정이 되었다. 스페인은 살리카 법에 따라 여자 후계자의 즉위를 금지하였는데, 1830년 페르난도 7세가 살리카 법을 폐지하여 여자도 국왕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살리카법이 적용되면 페르난도 7세의 동생 카를로스에게 왕위 계승권이 있었기에 그는 스스로를 카를로스 5세로 칭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의회와 주요 정당의 자유주의자들은 이사벨을 지지하고, 교화외 귀족 보수주의자들은 카를로스를 지지하는 내전이 7년간 계속되었다. 1839년 이사벨은 왕위를 지켜내고 내전을 끝냈다.
13세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했지만 6번의 헌법 개정과, 41번의 집권내각 교체, 15번의 쿠데타를 겪으며 어지러운 정치 속에 있었다.
1836년 사촌오빠인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데 보르본과 결혼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중 4명만 성인까지 살아남았다. 1868년 프란시스코 세노라 장군과 후안 프림 장군의 봉기로 이사벨 2세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사벨은 스페인 왕위를 아들 아으투리아스 공 알폰소에게 양위했지만 스페인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1871년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의 아마데오 1세가 스페인 왕위에 올랐으나 1873년 자진 사퇴하였고, 1874년 부르봉 왕가의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며 이사벨 2세의 아들 알폰소 12세가 즉위하였다. 아들이 왕위에 오르며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정치개입을 우려한 스페인은 그녀를 다시 프랑스로 망명시켰다.
알폰소 12세
1857~1885 재위 1874~1885
이사벨 2세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의 아들이다. 1868년 스페인 혁명으로 이사벨 2세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영국에서 왕실 군학교와 군 관련 공부를 하였고 1874년 스페인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며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878년 사촌 안토니 공작의 딸 마리아 메르세데스 공주와 결혼했지만 6개월만에 사망했다. 다음해 먼 친척인 오스트리아 대공 카를 페르디난트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았다.
알폰소 13세
1886~1941 재위 1886~1931
알폰소 12세와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아들로 유복자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왕위에 올랐기에 1902년까지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섭정이 되었고, 1931년 전국 시 선거를 통해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선포되며 망명하였다.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공주와 결혼하여 5남 2녀를 낳았다.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혈우병 보인자로 장남 알폰소와 막내 곤살로는 혈우병으로 인해 요절하였고, 차남 하이메는 청각장애를 가졌기에 넷째 아들만이 후계자였다.
훗날 넷째 아들 후안 데 보르본 이 바텐베르그의 아들이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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