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정보창고

태국 국왕 라마 10세 가계도 (짜끄리 왕조)

GoodFortune 2022. 12. 6. 17:18
반응형

현재 국왕 라마 10세는 짜끄리 왕조이다. 1782년부터 태국을 다스려온 짜끄리 왕조는 라마 1세부터 현 국왕 라마 10세까지 이어졌으며 이 포스팅에서는 라마 8세부터 라마 10세까지의 가계도를 나타냈다.

 

라마 8세

아난타 마히돈

1925~1946 재위 1935~1946

192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쫄랄롱꽅 대왕과 송클라의 아들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이고 어머니는 스리나카린트라이다. 아버지를 따라 1927년 미국 매사추세츠로 갔다가 1928년 귀국했다. 아버지 마히돈 왕자가 1929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어머니가 홀로 가족들을 길렀다. 1932년 쿠데타로 라마 7세의 왕정이 무너졌고 1934년  아난타 마히돈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라마 7세가 퇴위하였다. 아난타 마히돈은 학업을 위해 스위스로 돌아가 학업을 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귀국했다.

1946년 총기 수집가이던 그는 총에 맞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자신의 침실에서 총탄이 관통한 상태로 사망하였고 옆에는 자동권총이 있었다. 죽은 이유에 대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총이 폭발해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사망 당시 21세로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왕위는 동생 푸미폰이 계승했다.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1927~2016 재위 1946~2016

 

70년동안 태국의 국왕 자리에 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2세와 같은 최장기 군주이다. 생존 당시 세계 군주들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했으나 이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와 동일한 기간이다.

아버지 마히돈 왕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중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마히돈 왕자는 1928년 태국으로 돌아왔으나 1929년 사망하였고, 1933년 바히돈 왕자의 부인 스리나카린트라는 자녀들을 데리고 스위스로 갔다.

1935년 형 아난타마히돈이 태국의 왕 라마 8세가 되었으나 다시 스위스로 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태국으로 귀국했다.

1946년 귀국한 형이 의문사를 하였고 다음해 푸미폰은 왕좌를 계승했다. 학업을 위해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며 삼촌(큰아버지) 차이낫 링싯 프라유라삭디가 섭정이 되었다. 스위스에서 학업을 마친 후 파리를 방문하였는데 프랑스 대사의 딸인 사촌 몸라차웡 시리낏 끼띠야꼰을 만나게 되었다. 1948년 푸미폰은 교통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척추를 다쳤는데 병원에 입원한 동안 시리낏이 자주 방문하여 가까워졌다고 한다. 1949년 둘은 약혹식을 올리고 1950년 즉위식 일주일 전에 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장녀 우본라따나 공주는 1972년 피터 라드 젠슨과 결혼하며 공주 지위를 빼앗겼으나 1998년 왕실 권한과 지위를 되찾기 위해 이혼했다. 우본라따나 공주의 아들 한 명은 2004년 인도양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사망하는 일을 겪었다.

장남 마하 와치랄롱꼰은 라마 10세로 왕위를 이었다.

차녀 마하 짜끄리 시린톤 공주는 천사 공주라 불릴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높았다. 와치랄롱꼰이 3번의 이혼을 하며 여론이 시린톤 공주를 여왕으로 올리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삼녀 쭐라폰 왈라일락 공주는 화학 박사 출신 과학자로 공군 장성 위라윳 띳야사린과 결혼하여 2녀 리파 공주와 띳 공주를 낳았다.

 

 

라마 10세

마하 와치랄롱꼰

1952~ 재위 2016~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 시리낏 왕비의 장남이다. 방콕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미국, 영국, 호주에서 교육을 받았다.

1972년 20세가 되며 왕세자가 되었고 44년 이상 왕세자로 있다가 2016년 아버지 라마 9세가 사망한 후 태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태국 라마 10세의 즉위식 (2019년)

 

지금까지 4번의 결혼을 하였는데 세번의 결혼은 왕세자 시절에 했고 마지막 결혼은 국왕이 된 후 했다.

첫 결혼은 1977년 외사촌 소암사왈리와 결혼했다. 1978년 파차라키티야파 공주를 낳았지만 1970년 후반부터 여배우와 바람을 피웠고 5명의 자녀를 두었다. 소암사왈리는 수년 동안 이혼을 거절했지만 소송으로 1993년 이혼했다.

두번째 결혼은 5명의 자녀를 낳은 여배우 수자리니와 했다. 1979년 첫 왕자를 낳았고 이후 4명의 자녀를 더 낳은 후 1994년 결혼했다. 힘겨운 이혼 끝에 한 결혼이었지만 2년 후 그녀가 군 간부와 간통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궁전 곳곳에 붙여 그녀는 아이들과 영국으로 피신했다. 그녀의 딸 중 시리완나와리는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배드민턴으로 출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승마 종목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세번째 결혼은 스리라스미와 했다. 2005년 초까지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으며 4월 왕자를 낳고 스리라스미는 왕세자비가 되었다. 평민 출신 비서로 19세 연하였다. 2014년 스리라스미의 친인척 7명의 부패 혐의로 와치랄롱꼰은 내무부에 스리라스미 왕세자비의 모든 지위를 박탈해달라 요청했으며 스리라스미는 왕족 작위를 포기하고 이혼을 공식화했다. 그녀의 아들 티빵꼰 랏사미촛은 태국 왕위 계승 1순위이다.

마지막 결혼은 현재 왕비인 수티다 왕비와 결혼했다. 2019년 5월, 정식 대관식을 3일 앞두고 26세 연하의 승무원 추신인 수티다와 결혼을 했다.

와치랄롱꼰은 네번쨰 결혼을 하고 두달 뒤 33세 연하 후궁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를 공식화하였다. 후궁을 둔 태국 국왕은 100년만에 처음이었다. 시니낫은 2019년 행실이 문제되어 후궁에서 쫓아낸다는 발표가 있었으나 열달만에 다시 후궁으로 재임명 되는 일도 있었다.

와치랄롱꼰의 3번의 이혼과 방탕한 사생활로 태국 국민들은 그의 여동생 마하 짜끄리 시린톤이 여왕이 되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대부분 독일 바이에른에 살고 있으며, 태국에서 반왕정 시위가 벌어진 기간에도 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수티다 왕비는 이탈리아에서 혼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라마 10세는 후궁과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

태국에서 업무만 처리하고 독일에 거주하는 점이 문제가 되어 독일 외교부에서는 독일 땅에서 태국을 통치하는 왕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와치랄롱꼰은 자신의 애완견 푸푸의 생일파티에 세번째 부인을 알몸 상태로 티팬티만 입게 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고, 일본 외교를 위해 방일 당시 내연녀를 동반하여 국빈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일본 정부가 거부하지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고 한다. 지속적인 논란으로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당시 라마 10세는 반려견 30마리와 후궁이 포함된 수행단 250명과 호화 여행을 떠나 논란을 더 키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