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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2

개혁정치를 추진한 신돈

1323(충숙왕10) - 1371(공민왕20) 귀족의 영산 신씨 대가의 서자로 태어나 승려가 되었다. 어머니는 옥천사의 사비 박씨였다. 어머니가 노비였던 탓에 천한 처지로 있어 산방을 떠도는 승려로 지냈다. 신돈은 불당을 찾는 신도를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 신자들이 감동하였다. 신돈을 보며 신승이나 문수보살의 화신인 문수 후신이라 찬미했고, 백성들은 성인이 오셨다고 찬양하였다. 신돈이 살아있는 부처라는 소문을 듣고 공민왕은 영산현까지 직접 내려가 신돈과 만났고, 신돈을 개경으로 불러들여 시국을 논한 공민왕은 신돈의 달변에 매료되었다. 신돈은 개경의 현화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1354년(공민왕3) 신돈을 왕사로 임병했으나 노비 출신의 신분이 문제가 되어 권문세족이 반발하였고, 입궐할 수 없었다. 135..

개혁으로 시작했지만 술과 남색에 빠진 고려 공민왕

공민왕 (고려 31대 왕) 1330-1374 재위 1351-1374 공민왕은 1330년 고려 27대 왕 충숙왕과 고려 출신 공원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려 28대 왕 충혜왕의 동복동생이다. 원나라 황실 출신은아니었지만 원나라의 압력에 의해 몽골에 입조하게 되었고 1341년(충혜왕 복위2)에 원나라에 갔다. 1344년(충목왕 원년) 강릉부원대군에 봉해졌고 1349년(충정왕1) 원나라의 황족인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충혜왕에게는 아들 충목왕과 충정왕과 서자 왕석기가 있었다. 석기는 충혜왕 사후 은천옹주가 폐출되면서 처형되었고, 충목왕과 충정왕은 후사가 없었다. 충정왕의 생모인 희비 윤씨의 외척들이 덕녕공주의 섭정에 반발하고 조정을 혼란스럽게 하자 1351년 원나라 황제는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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