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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2

급진개화파 박영효의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1861-1939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로 고종의 친척 매제였다. 급진 개화파로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주도했으나 실패로 인해 20여 년을 일본 망명 생활을 했다. 1882년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고종의 명으로 제작된 이응준 태극기 중 4괘의 좌우를 바꿔 재도안 했고, 이것이 태극기의 원형이 되었다. 박영효는 1861년(철종12) 아버지 박원양의 아들로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박영효는 형 박영교와 홍문관 제학이던 박규수의 문하생이 되었다. 박규수와 유대치에게서 새 문물에 대한 정보와 개화사상을 배웠고, 개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알게 되었다. 어윤중, 김옥균, 김윤식, 홍영식, 유길준, 서광범, 서재필, 윤치호 등 동문수학했던 이들과 가까워졌고, 훗날 개화당을 만들었다. 1872년(고종9), 철종의 딸인..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 / 이완용 가계도

1858-1926 이완용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1858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출생했고, 본관은 우봉 이씨이다. 1867년 10세에 친척인 예방승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며 양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이호준은 당대 정계의 거물로 이조참의, 승정원 동부승지, 한성부 판윤 등 최고위 관료이자 흥선대원군의 친구였다. 이완용은 이릴적 머리가 비상하고 문리를 일찍 깨쳐 집안의 주목을 받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해아할 때는 달성하려 노력했고, 꼼꼼해서 학업 성취도가 매우 빠른 편이었다 한다. 13세에 양주 조씨와 혼인하였고, 1882년(고종19) 25세의 나이로 증광별시에 문과로 급제하였고, 1886년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었다. 1886년 조선후기 한국 최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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