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영국 윈저 왕조 창시자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GoodFortune 2022. 9. 12. 15:15
반응형

조지 5세

1865.6.3~1936.1.20 재위 1910.5.6~1936.1.20

 

작섹코부르크고타 왕조 에드워드 7세의 아들로 현 영국의 왕가인 윈저 왕조의 창시자이다.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의 아버지이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본명은 조지 프레데릭 어니스트 앨버트로 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의 차남이다. 형 앨버트 왕자가 1892년 독감으로 사망하게 되며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형의 약혼녀인 테크의 메리와 결혼하였다.

조지는 본래 독일의 공작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었으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반독일 감정이 커져 영국 왕실의 역사적 거주지인 윈저 성의 이름을 따라 가문명을 윈저로 개명하였다. 개명한 가문이름은 독일의 바텐베르크이다. (당시 독일의 큰 가문들은 이름을 버리는 일이 많았는데 메리 왕비의 테크 가문은 케임브리지 가문으로 바뀌었다)

 

1915년 낙마사고와 제1차 세계대전 등이 맞물려 건강이 약화되었고 1928년 패혈증에 걸렸다. 의식이 오락가락 하며 치매에 걸려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안락사를 옹호했던 주치의 도슨 경은 국왕의 위엄있고 평안한 죽음을 위하여 조지 5세의 의사를 묻지않고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하게 되며 세상을 떠났다. (주치의의 일기가 1986년 공개되었다)

아내인 메리 왕비는 1953년까지 생존하였는데, 두 아들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와 손녀 엘리자베스 2세의 왕위 계승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에드워드 8세

1894.6.23~1972.5.28 재위 1936.1.20~1936.12.11

 

본명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티안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이쯤이면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영국인들도 없을듯...?)

1894년 태어날 당시 빅토리아 여왕 재위시기였으며 할아버지는 에드워드 왕세자, 아버지는 조지 왕세손으로 왕위 서열 3순위로 태어났다. 왕세자 시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군주제 자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파티를 즐기며 바람둥이로 유명했다. 이혼녀 프리다와 오랜 연인 관계였고 국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에드워드 8세는 아버지 조지 5세의 사망 후 왕위에 올랐으나 고작 10개월 22일 후에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순방시에 월리스 심프슨과 동행하기도 했다. 의회에서 심프슨이 미국출신에 이혼을 2번이나 한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기에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포기하고 만다. (다음해 프랑스에서 심프슨 부인과 결혼했다.)

이 뿐 아니라 에드워드 8세는 친나치 성향의 모습을 보이며 외교정책에 간섭을 하기도 했다. 퇴위 후에도  독일 함선을 타고 1937년 나치 독일을 방문해 파티를 즐기고, 1939년 나치 독일과 영국은 친밀해야 된다는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기도 했다(BBC에서 거부하여 방송되지는 못하였다.)

BBC 의 다큐멘터리에서는 훗날 에드워드 8세가 자신의 아버지가 윈저 왕조로 이름을 바꾸기 전 독일 작센코부르코고타 왕조였던 것을 이유로 독일 혈통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고 방송했다. 이후 에드워드 8세는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여생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에드워드 8세의 연인이였던 프랑스인의 손자가 1994년부터 자신의 할아버지가 에드워드 8세라고 주장한 사건이 있다. 1994년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의 여자친구가 에드워드 8세와 닮았다는 말에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출생증면서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Edouard"로 적혀있었다며 버킹엄 궁전에 있는 엘리자베스 2세에게 DNA 검사를 해달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는데 궁에서는 강력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윈저 왕조 가계도

 

조지 6세

1985.12.14~1952.2.6 재위 1936.12.11~1952.2.6

 

형이 사랑하는 여인을 이유로 왕위를 물러난 후 동생인 조지 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조지 6세는 부담감 때문에 어머니메리 왕후를 찾아가 1시간 동안 울었다고 한다. 조지 6세의 재위기간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냉전이 시작되는 등 영국 역사상 급박한 시기였고, 그 때문에 조지 6세는 스트레스와 줄담배로 건강을 해쳐 폐암으로 일찍 죽었다. 이 때문에 왕비 엘리자베스는 에드워드 8세의 무책임함을 이유로 그들 부부를 싫어했다.

조지5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며 찰스 3세의 외할아버지다. 왕실에서는 다른 나라 왕족과 결혼하길 기대했으나 조지5세는 직접 신부감을 골랐고, 1923년 백작 영애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과 결혼해 두 딸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을 두었다. 어린시절부터 말더듬이 심했는데 왕위에 오른 후 언어치료사의 치료를 받고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받는다. 재위기간 동안 인도가 독립하면서 인도의 황제 자리는 내놓게 되고 아일랜드가 수립되며 아일랜드의 왕 자리 또한 내놓게 된다.

호주 순방 중 들른 영국령 자메이카에서 흑인과 함께 테니스를 친 일화가 유명하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당시 인종간의 평등을 보여준 사례이다. 형 에드워드 8세는 인종차별적 언행을 일삼았는데 대조되는 모습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