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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요크 왕가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

GoodFortune 2022. 9. 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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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4세 - 에드워드 5세 - 리처드 3세

에드워드 4세

1442.4.28~1483.4.9 재위 1461.3.4~1470.10.3 1471.4.11~1483.4.9

 

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왕인 헨리 6세 다음 왕위는 에드워드 4세가 가져갔다.(1455년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왕좌를 놓고 장미전쟁을 벌여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올랐으니 가져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에드워드 4세는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와 세실리 네빌 사이의 13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두 형이 일찍 죽으며 장남이 되었다.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헨리 6세에 대한 반란의 중심인물이 되며 요크파 사이에서 왕위 계승자 취급을 받았다. 1460년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전사하자 아들인 에드워드가 세력을 이어받아 헨리 6세와 전투를 벌였고, 승리하여 런던을 점령하고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랐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플랜태저넷 왕가 에드워드 3세의 3남인 에드먼드의 아들로 에드워드 4세는 에드워드 3세의 증손자가 된다. (에드워드 3세 - 에드먼드 - 요크 공작 리처드 - 에드워드 4세)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즉위한 에드워드 4세는 헨리 6세를 감금시키고 암살했다.(당시 헨리6세의 어린 아들 에드워드는 어머니 앙주의 마거릿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가 왕위에 오른데에는 '킹메이커'라 불린 리처드 네빌의 역할이 컸다. 리처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와 사촌지간이다. (어머니 세실리 네빌이 리처드 네빌의 고모)

 

리처드 네빌과 요크 가문 귀족들은 에드워드 4세를 발루아 왕실의 프랑스 공주와 결혼시키려 했는데, 에드워드 4세는 1470년 젊은 미망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몰래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헨리 6세의 인척인데다 아버지 리처드 우드빌은 귀족이 아닌 베드퍼드 공작의 시종무관이었기에 엘리자베스는 평민이나 다름없었다. 이 일로 헨리 6세의 아들 에드워드는 리처드 네빌의 딸 앤 네빌과 결혼해 리처드 네빌과 동맹을 맺고 아버지 헨리 6세를 복위시켰으나, 에드워드 4세는 다음해 바로 반격에 나섰고 동생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리처드 3세)와 함께 런던을 탈환하고 리처드 네빌을 죽였다. 헨리6세의 아들 에드워드는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했다.(영국의 왕세자 중 유일하게 전사) 아내인 앤 네빌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 리처드 3세와 재혼해 미들햄의 에드워드를 낳고 왕비가 되었다.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서 3남 7녀를 두었으며 6명의 사생아를 두었다. 여자관계는 복잡했다고 하는데 리처드 3세는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혼인을 무효화시키고, 아들인 에드워드 5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다른 자식들도 전부 사생아로 격하시켰다. 이후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는 런던탑에 감금된 뒤 실종되는데, 정황상 암살이 유력하다.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훗날 헬리 튜더와 결혼하여 헨리 7세의 왕비가 된다.

 

 

에드워드 5세

1470.11.2~1483 재위 1483.4.9~1483.6.25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죽자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성인이 될때까지 숙부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리처드 3세)가 섭정하게 된다. 실권자는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었는데 이 때문에 우드빌 가문과 리처드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리처드의 승리로 끝이 난다. 리처드는 에드워드 6세와 그의 동생 요크 공작 리처드를 런텁탑에 머무르게 하며 에드워드 4세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빌미로 에드워드 5세의 사생아설을 퍼뜨렸다. 글로그터 공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가 엘리너 버틀러라는 숙녀와 먼저 결혼한 상태에서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했다고 주장하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쫒아내고 그의 자식들은 사생아라고 결론내렸다. 에드워드 5세는 폐위되었고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리처드 3세로 왕위에 올랐다.

 

리처드 3세

1452.10.2~1485.8.22 재위 1483.6.26~1485.8.22

 

요크 공작 리처드와 세실리 네빌의 13남매 중 12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형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섭정에 올랐으나 조카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영국판 계유정난)

리처드 3세의 유일한 적자 에드워드가 1484년 사망하자 누이의 아들인 외조카 존 드 라 폴을 추정상속자로 지명했다. 왕비 앤 네빌이 아이들 못 낳자 왕비가 빨리 죽길 소원으로 빌었다고 한다. 후계자가 없어 왕권 지지기반이 흔들리자 리처드는 자신이 사생아로 격하시킨 '요크의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는 설도 있다. (엘리자베스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이니 친조카이다.) 두 사람의 결혼설이 퍼지자 비밀리에 엘리자베스 우드빌 전 왕비와 동맹을 맺었던 헨리 튜더가 프랑스와 랭커스터 지지자들과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잉글랜드 군대와 튜더 가문의 군대가 전투를 벌였다. 리처드 3세의 병력이 이기는 추세였으나 관망하고 있던 스탠리 가문이 개입하면서 리처드는 전사하게 된다.

전투가 끝난 뒤 헨리 튜더(헨리 7세)는 왕위에 오르며 튜더 왕조가 시작되었다. 정통성이 약했던 튜더 왕조에서는 리처드 3세를 찬탈자, 조카 살해자와 같은 이미지로 퇴색시켰고 그의 초상화는 음흉하고 음모에 가득 차 있게 그렸다.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서 정통성을 강화하였다.

훗날 찰스 2세 때 런던탑 계단을 보수하다 유골 상자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골들이 에드워드 5세와 요그 공작 리처드로 보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유골의 발굴과 정밀 검사를 허락하지 않아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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