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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노르만 왕조 윌리엄 1세 - 윌리엄 2세 - 헨리 1세

GoodFortune 2022. 9. 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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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1세 - 윌리엄 2세 - 헨리 1세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왕위에 오른 윌리엄은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의 첫번째 국왕이다.

 

윌리엄 1세 - 윌리엄 2세 - 헨리 1세

 

윌리엄 1세

1028~1087.9.9

 

유럽 대륙에서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한 잉글랜드의 왕으로 노르만 왕조의 창시자이다. 노르망디 공작인 로베르 1세와 평민 출신 내연녀 에를드바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기에 사생아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당시 사생아에 대해 엄격했던 시대였으나 로베르 1세에게 유일한 아들이기에 후계자가 되었다. 아버지 로베르 1세가 사망하자 7살에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는데, 사생아라는 이유로 친척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암살 시도가 있기도 했다. 윌리엄은 프랑스 왕 앙리1세와 로베르 대주교 등의 지지를 받아 위기를 극복하였고 15살에 기사로 인정받은 뒤에는 안정이 되었다.

플란데런의 공녀인 마틸다에게 청혼하였는데, 마틸다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거부하자 마틸다를 찾아가 결혼승락을 받을때까지 때렸다는 설이 있다. 어쨋든 두 사람은 마틸다의 아버지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 5세와 교황 레오 9세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고 4남 5녀를 두었다. 레오 9세는 죽을 때까지도 이 결혼을 반대하였는데 11촌 친족사이라는 이유로 근친혼이라고 반대를 했다고 한다. 레오 9세는 원칙파 개현 교황이었기에 근친상간인 윌리엄과 마틸다의 결혼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1066년 잉글랜드의 왕위는 해럴드 2세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선대 왕 에드워드의 처남이었다. 해럴드 2세가 이전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포로가 되어 봉신 역할을 하며 충성을 맹세했고, 에드워드 왕이 생전에 윌리엄에게 왕위를 약속했다(에드워드의 어머니 노르망디의 엠마는 윌리엄1세의 할아버지의 누이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공격했다. 프랑스의 필리프 1세와 교황 엘렉산데스 2세의 지지를 받아 윌리엄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었다. 잉글랜드 토착귀족들을 억압하여 잉글랜드에는 명백한 약탈자였으나 윌리엄 1세는 질서를 확립하고 교회와 균형을 이루며 잉글랜드 왕가를 안정시켰다.

잉글랜드를 안정시킨 윌리엄 1세는 프랑스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힘을 쓰게 된다. 프랑스 필리프 1세와 충돌하게 되고 프랑스와의 전쟁을 일으켜 전쟁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윌리엄 1세는 프랑스의 망트를 공격하던 중 사망하였고, 3남 윌리엄이 왕위에 올랐다. (장남 로베르는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해 윌리엄 1세에게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프랑스로 추방당했다가 윌리엄 사망 직전 노르망디 공작 자리에 올랐다. 차남 리처드는 일찍 사망했으며 3남이 왕위를 받게 된다.)

 

윌리엄 2세

1056~1100.8.2

 

아버지 윌리엄 1세가 사망하자 잉글랜드를 물려 받으며 왕위에 올랐다.(형 로베르는 노르망디를 물려받았다) 양쪽 모두에 토지를 갖고 있던 귀족들은 하나의 군주로 통합하고 싶어했는데, 1091년 윌리엄 2세는 노르망디를 침공해 상당한 영토를 빼앗았다. 이후 윌리엄 2세는 형과 화해하고, 프랑스 카페 왕조로부터 노르망디 영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윌리엄 2세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1096년 형 로베르 2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자 윌리엄이 섭정을 맡아 노르망디까지 통치하기도 했다.

윌리엄 2세는 숲속을 사냥하던 중 날아든 화살을 맞고 죽었다. 당시 동생 헨리와 귀족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의 시체를 그냥 둔채 가버렸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나중에 한 농부가 발견했다. 동생 헨리는 런던으로 가서 며칠 후 대관식을 올리고 왕위에 올랐다. 윌리엄 2세는 40살이 넘어 죽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사생아도 없었기에 동성애자라는 의혹이 있다.

 

노르만 왕조 가계도

 

헨리 1세

1068~1135.12.1

 

윌리엄 1세와 플랑드르의 마틸다의 4남으로, 헨리라는 이름은 윌리엄 1세의 은인이었던 프랑스 앙리 1세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형 윌리엄 2세가 숲에서 화살에 맞아 죽고 3일 뒤 왕위에 올랐다. 정당한 왕위 계승은 형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에게 있었으나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고 있었기에 자리에 없었고 헨리는 빠르게 대관식을 올렸다.

즉위한 후 스코틀랜드 왕 맬컴 3세의 딸 마틸다와 결혼하였다.

로베르 2세는 군대를 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왕위계승자임을 주장하였으나 헨리 1세는 안셀무스 대주교의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싸움을 벌였고 노르망디 지방의 영토와 연금을 주고 로베르 2세에게 잉글랜드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노르망디 귀족들은 로베르 2세의 통치에 불만이 많았고, 그들의 부탁으로 헨리 1세는 1106년 노르망디를 정벌하고 형 로베르를 포로로 잡아 가두었다.

외아들 윌리엄은 배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었고, 상속자는 딸 마틸다가 되었다(다른 23명의 자녀들은 모두 사생아이다). 1125년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가 죽자 그의 황후였던 마틸다를 불러 후계자로 정하였다. 마틸다는 앙주 백작 풀크 5세의 아들 조프루아 5세 플랜태저넷과 결혼하고 헨리 2세를 낳았다. 하지만 귀족들이 앙주 백작 가문에 대한 반감이 강하였고 여왕의 전례가 없었기에 귀족들의 지지가 약했다. 헨리 1세 사망 후 내전이 벌어지고 헨리 1세의 조카인 스티븐이 왕위를 가져가게 되었다. (마틸다와 스티븐의 왕위계승 전쟁은 19년간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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