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가 (현재 여왕 마르그레테 2세) 가계도

GoodFortune 2022. 9. 29. 11:36
반응형

현재 마르그레테 2세의 가문인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가계도를 정리한다.

전체 이름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이며 줄여서 글뤽스부르크 왕가로 불린다.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가 프레데리크 7세가 자녀가 없어 왕실의 피를 가진 크리스티안을 양손자로 삼고 왕위를 계승하면서 덴마크의 글뤽스부르크 왕가가 시작되었다. 

 

크리스티안 9세

1818~1906 재위 1863~1906

 

크리스티안 9세는 글뤽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헤센카셀 방백 영애 루이제 카롤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군주 프레데릭 5세(올덴부르크 왕가)의 외손녀이므로 크리스티안 9세는 프레데릭 5세의 외증손자가 된다. 또한 프레데릭 6세의 왕비 헤센카셀의 마리아는 크리스티안 9세의 이모가 되기도 한다.

1842년 6촌 사이의 헤센카셀의 루이세와 결혼하여 덴마크에 살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모두 덴마크 왕실의 피를 갖고 있었다. 프레데릭 7세가 후계가 없자 1852년 양손자가 되었고 그가 사망하자 1863년 덴마크의 왕위를 이었다.

크리스티안 9세의 3남 3녀에서 장남 프레데리크 8세는 덴마크 국왕, 장녀 알렉산드라는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왕비, 차남 요르요스 1세는 그리스 국왕, 차녀 다그마르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가 되어 많은 유럽 군주들이 크리스티안 9세의 후손들이다.  (이는 크리스티안 9세가 유럽의 할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덴마크 클뤽스부르크 왕가 가계도

 

프레데리크 8세

1906~1912 재위 1906~1912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63년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가 왕위에 오르며 왕세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재위기간이 길었기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산책 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딸 로비사와 결혼해 4남 4녀를 두었다.

장남 크리스티안 10세는 덴마크 왕위를 이었고, 차남 호콘 7세는 사촌인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딸 웨일스 모드와 결혼하였고, 1905년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이 해산되면서 노르웨이의 국왕이 된다.

 

 

크리스티안 10세

1870~1947 재위 1912~1947

 

프레데리크 8세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공주 루이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위 후 독일에 빼앗긴 술레스비히 지방을 되찾았으나 주민투표로 인해 남부 슐레스비히는 독일에 남겨둬야 했다. 그리너 덴마크에서는 남부 슐레스비히도 덴마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크리스티안 10세는 총리 카를 테오도르 잘레에게 명령했다. 총리는 북부 슐레스비히만 통합한 후 사임하였는데 이에 분노한 크리스티안 10세는 내각을 해산하여 보수파 내각으로 새로 구성했다. 이 일로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크리스티안 10세는 다시 보수파 내각을 해산시키게 되며 왕권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에 점령되었다. 당시 히틀러는 덴마크를 같은 게르만 민족국가로 여겼기에 크리스티안 10세는 코펜하겐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폭력에 대항하여 크리스티안 10세는 히틀러의 장문의 편지에 짧게 답을 하고, 덴마크 왕궁의 하켄크로이츠기를 내렸다. 또한 덴마크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노란별을 달것을 명령한다. 이 일로 히틀러는 1944년 아이슬란드를 동군연합에서 독립시키고 덴마크 주재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세계 2차 대전의 일로 크리스티안 10세는 덴마크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국왕이 되었다.

알렌산드리네 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녀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크리스티안 10세 - 프레데리크 9세 - 마르그레테 2세

 

프레데리크 9세

1899~1972 재위 1947~1972

 

크리스키안 10세와 메클렌부크슈베린 알렉산드리네 사이의 장남이다. 스웨덴의 공주 잉리드와 결혼해서 세 딸을 두었다. 장녀 마르그레테는 현재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이며 차녀(1944~) 베네딕트는 자인-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 3녀(1946~) 안나마리아는 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 2세와 결혼하여 그리스의 왕비가 되었다.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 가계도

마르그레테 2세

1940~ 재위 1972~

 

프레데리크 9세와 앙리드 왕비 사이의 장녀이다.

덴마크는 1953년까지 여성이 왕위를 상속할 수 없었으나 잉리드 왕비가 세 딸만 두자 네덜란드나 영국의 여왕 즉위에 영향을 받아 헌법 개정을 하여 마르그레테가 추정 왕위상속자가 되었다.

1967년 프랑스 귀족 태상 외요관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백작(헨리크 디 몽페사트)과 결혼하여 프레데리크(1968~) 와 요아킴(1969~) 두 아들을 낳았다.

1972년 아버지 프레데리크 9세가 사망하자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덴마크의 첫 여왕이 되었고, 현재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왕세자 프레데리크는 호주 출신 부동산 중개인 메리 도날드슨과 결혼하여 2남 2녀(왕세손 크리스티안, 이사벨라 공주, 빈센트 왕자, 조세핀 공주)를 두었다. 차남 요아킴은 홍콩 출신 알렉산드라와 결혼해 두 아들(니콜라이 왕자, 펠릭스 왕자)을 낳았으나 이혼하였고 3년후 2008년 마리와 재혼하여 1남 1녀(헨리크 왕자, 아테나 공주)를 낳았다.

2007년 방한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립현충원, 인사동 등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왼)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2014년 크리스마스 기념 사진과 (오른)여왕의 직계가족 사진

현재 덴마크 왕실에는 직계손자손녀만 8명이기에 왕실 가족이 많아 왕실 혈통에 대한 연봉이 이슈가 될 정도라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