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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조 3

백제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위덕왕 가계도

백제 22대 문주왕(475-477)은 개로왕의 아들이다. 에는 개로왕의 아들로, 에는 개로왕의 동생으로 기록되었으나 를 따르겠다.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공격하자 태자 문주는 개로왕의 명을 받아 신라에 가서 원병을 요청했다. 신라 군사 1만명과 돌아왔으나 한성은 이미 함락되었다. 그사이 개로왕은 승하하였고 문주왕은 뒤를 이어 즉위했다. 일설에는 개로왕이 죽음을 예견하고 태자 문주를 피신시킨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문주왕은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477년 문주왕은 동생인 부여곤지를 내신좌평으로 명하고, 장남 삼근을 태자로 세웠다. 백제의 귀족들 내부 갈등이 심하였던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18대 전지왕의 외척 병권좌평 해구의 쿠데타에 의해 암살당했다. 백제 23대 삼근왕(477-479)은 ..

백제 13대 근초고왕부터 21대 개로왕 가계도

백제의 13대 어라하 근초고왕(346-375)는 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차츰 국가의 모습을 갖출 무렵 태어났다. 346년 계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오른 근초고왕은 마한 54개 연맹체를 통일하여 백제의 전성기를 지낸 왕이다. 에 따르면 366년 백제가 소백산맥을 넘어 가야, 탁순국, 안라 등 가야연맹 7개국을 정벌하고 남쪽으로는 침미다례를 무찌르고 비리 등 4읍의항복을 받았다고 한다. 366년 신라(흘해 마립간)와 동맹을 맺고 368년 명마 두필을 신라에 보내기도 했다.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치양성으로 쳐들어왔으나 태자 근구수를 보내 고구려군을 무찔렀다. 당시 고구려로 도망쳤다가 돌아온 백제인 사기가 고구려의 군사정보를 제공하여 태자가 고구려군을 격퇴..

백제초기 어라하 온조왕부터 12대 계왕 가계도

백제의 왕의 칭호는 '어라하'였다. 백제조에 의하면 '왕의 성은 부여씨이고 이름은 어라하라 하는데 백성은 건길지라고 부른다.' 어라하는 한자어로 왕과 같다 백제의 건국자이자 초대 어라하인 온조왕(기원전18~28)는 고구려의 동명성왕과 소서노의 아들이다. 고구려의 왕자였으나 동명성왕의 부인 예씨와 적자 유리명왕이 기원전 19년 부여에서 고구려 졸본으로 오자, 어머니 소서노,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를 잡고 온조왕은 위례성에 수도를 정하고 이름을 '십제'라 했다.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 살 수 없어 백성들이 위례로 떠나자 비류는 자결했고 온조는 이들을 받아들인 후 나라의 이름을 '백제'라 하였다. 본래 성은 '해'였으나 그 계통이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여'를 성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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