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삼국시대

백제 13대 근초고왕부터 21대 개로왕 가계도

GoodFortune 2019. 9.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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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13대 어라하 근초고왕(346-375)는 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차츰 국가의 모습을 갖출 무렵 태어났다. 346년 계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오른 근초고왕은 마한 54개 연맹체를 통일하여 백제의 전성기를 지낸 왕이다.

 

근초고왕

<일본서기>에 따르면 366년 백제가 소백산맥을 넘어 가야, 탁순국, 안라 등 가야연맹 7개국을 정벌하고 남쪽으로는 침미다례를 무찌르고 비리 등 4읍의항복을 받았다고 한다. 366년 신라(흘해 마립간)와 동맹을 맺고 368년 명마 두필을 신라에 보내기도 했다.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치양성으로 쳐들어왔으나 태자 근구수를 보내 고구려군을 무찔렀다. 당시 고구려로 도망쳤다가 돌아온 백제인 사기가 고구려의 군사정보를 제공하여 태자가 고구려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한다. 371년에는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와 함께 패수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대방 지역을 점령하였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369년에는 왜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하였다. 칠지도에는 61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을 보면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내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백제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와 강원도, 황해도까지 퍼져있던 마한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를 통일하며 강력한 고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근초고왕은 진씨 귀족과 혼인을 맺고 진씨 가문의 지지를 받으며 왕권을 강화했다. 왕후 진씨에게서 아들 근구수왕을 두었다.

 

근초고왕 시기 백제

 

백제 14대 어라하 근구수왕(375-384)은 근초고왕과 왕비 진씨의 아들이다. 태자 시절 369년 근초고왕과 함께 남방을 정벌하여 마한 54개국 중 4개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또한 고구려 고국원왕이 북쪽으로 쳐들어오자 군사를 끌고 맞섰다. 371년에 고구려가 또 침입하자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375년 근초고왕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고 장인 진고도가 내신좌평이 되었으며 진씨는 최고의 권세를 가지게 되었다.

 

376년 고구려 소수림왕이 백제 변경을 공격해왔고 377년 근구수왕은 평양성을 공격해였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백제를 잇달아 침공했으며 신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를 견제했다. 왕비 아이부인 진씨는 진고도의 딸이며 두 아들은 15대 침류왕과 16대 진사왕이다.

 

백제 왕조 가계도

백제 15대 어라하 침류왕(384-385)은 근구수왕과 아이부인 진씨의 장남이다. 384년 동진에 조공하였는데 이후 동진에서 호승 마라난타가 들어오며 불교가 처음 전파되었다. 재위 2년째인 385년 승하하면서 아들의 나이가 어려 동생인 진사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비 진씨에게 3남 부여아신(아신왕), 부여훈해, 부여설례를 두었으며 후궁에게서 아들 부여홍을 두었다. 훗날 부여훈해는 아신왕이 죽은 후 대신 섭정하며 일본에 볼모로 간 조카를 기다렸다. 이에 부여설례는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찬탈했으나 백제 대신들에게 암살되었다. 부여홍은 아신왕 대에 내신좌평에 임명되었다.

 

 

 

 

 

 

백제 16대 어라하 진사왕(385-392)은 진사왕과 아이부인의 차남이다. 형인 침류왕이 승하했을 당시 장남 부여아신이 어렸기에 대신 왕위에 올랐다. 390년 달솔 진가모를 시켜 고구려의 도곤성을 함락시켰으나 391년 고구려 광개토왕이 즉위하며 판세가 바뀌었다. 391년 광개토왕은 백제 북쪽 석현성 등 10여 개 성을 함락시켰고 이어 관미성도 함락시켰다. 진사왕은 392년 사냥을 나갔다가 행궁에서 사망하였다. <일본서기>에는 385년 진사왕이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나오며 392년에는 일본 일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일본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당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의 아들 진손왕은 근구수왕 때에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이후 일본에 귀하했다. 아들 태아랑왕은 닌토쿠 천왕 때 시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백제 왕조 가계도

백제 17대 어라하 아신왕(392-405)은 침류왕의 장남이다. 침류왕 사망 당시 나이가 어려 숙부인 진사왕이 즉위했으나 392년 진사왕이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392년 고구려 광개토왕은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의 10여개 성을 점령하고 관미성을 점령했다. 393년 고구려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장군 진무가 관미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394년 395년에도 고구려군과 싸웠으나 패하였고 400년 가야, 왜군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지만 신라를 도운 광개토왕에게 패하였다.

394년 전지를 태자로 삼고, 이복동생 부여홍을 내신좌평이 임명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압박에 부닥친 백제는 397년 왜와 우호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부여영)를 볼모로 보냈다. 405년 붕어하자 일본에 있던 태자를 불러들였다.

 

 

 

백제 18대 전지왕(405-420)은 아신왕의 장남 부여영이다. 일본에 있는 태자 전지가 들어오기 전까지 숙부 부여훈해가 임시 섭정을 맡게 되었으나 침류왕의 3남인 부여설례가 부여훈해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고자 하였다. 대신 해충이 부여설례를 몰아내어 주살하였고, 전지왕이 일본에서 도착하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전지왕은 16세였던지라 3년간 해충이 섭정하였고 그 이후 친정하였다.

 

백제 19대 구이신왕(420-427)은 전지왕과 팔수부인의 아들로 전지왕 승하후 즉위하였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구이신왕이 어렸기에 목만치가 섭정하였다고 한다. 목만치는 고려 목종 대의 천추태후와 비슷한 난정을 벌였다. 한국의 자료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서기>에만 등장한다. 비유왕이 반정을 일으켜 목만치 세력을 제거했다. 구이신왕은 반정 중 목만치 혹은 비유왕 세력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백제 20대 비유왕(427-455)은 구이신왕의 맏아들이다. 즉위 후 1년간 해충이 섭정하였고 428년부터 454년까지 친정하였고 이후 아들 부여경사가 대리청정하였다. 433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하였으며 120년간 동맹 관계를 이어갔다. 533년(성왕) 신라의 진흥왕에게 배신당하며 동맹이 깨진다.

 

백제 21대 개로왕(455-475)은 비유왕의 아들 부여경사이다. 비유왕 사후 즉위하였다. 455년 고구려가 백제를 침략해자 신라 눌지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다. 이는 나제동맹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첫 사례이다. 469년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게 하고 북한산성의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하는 등 고구려를 견제했다. 472년 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전쟁을 벌여달라 요청을 하였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의 위례성은 함락되고 개로왕도 처형되었다. 고구려군이 공격해오자 개로왕은 왕자 문주를 남쪽으로 도피시키고 성을 빠져나왔지만 고구려 두 장수에게 붙잡혀 아차산 아래에서 피살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는 두 장수를 백제에서 죄를 지어 고구려로 도망친 자로 설명했다.

 

개로왕의 가계는 불분명한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따르면 문주왕과 부여곤지가 그의 아들이라고 하며 일본서기에는 문주왕과 부여곤지가 개로왕의 동생이라 되어 있다.

 

근초고왕은 왜의 야마토 왕조와 국교를 수립하고 칠지도와 칠자경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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