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스문명
미노스문명은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이다. 섬 이름을 따서 크레타문명이라고도 부른다. 미노스문명의 시기는 B.C 3650년부터 B.C 1170년이며 번성기는 B.C 2700년부터 B.C 1500년까지이다. 기원전 2000년 이후에 선형 A문자를 쓰게 되었다. B.C 1450년에는 선형B문자가 나타나는데 이 무렵부터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 섬을 지배한 것으로 보고있다. 미노스 문명은 20세기 초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서 에반스는 1898년 크노소스 왕궁을 발굴하기 시작하여 35년동안 크레타섬에 머물며 왕궁과 벽화를 복원했다.
미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크레타섬의 전설적인 왕인 미노스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이다. 제우스는 에우로페에게 반해 황금 뿔이 달린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에게 접근했다. 에우로페는 미노스를 비롯한 세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와 결혼시켰다. 미노스는 형제들과 함께 크레테의 아스테리오스 왕의 양자가 되었다. 에우로페가 죽자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녀를 기려 대륙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 'Europe' 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스테리오스가 죽자 세 아들이 왕위를 놓고 다투었는데,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확소 한 마리를 보내달라고 하였고, 포세이돈이 온몸이 하얀 황소를 보내 주어 형제들이 미노스를 왕으로 받아들였다. 미노스는 키레타를 강력한 해양국가로 만들었다.
이때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다시 돌려주지 않자 화가난 포세이돈과 아프로디테는 미노스의 부인 파시파에에게 하얀 황소를 사랑하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파시파에는 황소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왕비는 대장장이 다이달로스에게 받은 나무 암소 속에 들어가 하얀 황소와 사랑을 나누었다. 파시파에는 황소 머리를 가진 아이(미노타우로스)를 낳았고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우리를 만들도록 했다. 다이달로스는 라비린토스라는 미로를 만들었다. 들어가기는 쉬우나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미로였다. 미노타우로스는 어린아이들만 먹었는데,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은 미로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었고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혔다.
포세이돈이 보내준 하얀 황소는 헤라클레스가 아르고스로 끌고 갔는데 우리를 뛰쳐나와 마라톤 평원으로 도망쳐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아테네에서 열린 운동대회에 참가해 전 종복에서 우승을 차지한 영웅인데, 아테네의 왕은 안드로게오스에게 이 황소를 처지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황소의 뿔에 받혀 죽고말았다.
미노스는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테네를 공격했다. 미노스는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빌었고, 제우스는 아테네에 전염병을 퍼뜨려 항복하도록 했다. 미노스는 아테네에 매년 아홉살 난 아이 일곱쌍을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제공하라는 강화조약을 하였다.
이 때 아테네에 나타난 영웅 테세우스는 황소를 잡아 아폴론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가 한 여인과 하룻밤 사랑을 한후 가진 아이인데, 실제 아버지는 아이게우스보다 먼저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눈 포세이돈이다. 이를 알지 못한 아이게우스는 여인에게 징표를 남겼고, 테세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를 찾아 아테네로 왔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죽이러 가겠다고 하였고, 아프로디테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에게 사랑의 마음을 심어 테세우스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도록 하였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돕고자 다이달로스를 찾아가자,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실 뭉치를 주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과 칼을 주었고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죽인 뒤 둘은 함께 달아났다. 미노스가 분노하여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가뒀으나 둘은 탈출하였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를 잡기 위해 꾀를 내어 고둥 껍데기를 실로 꿰면 상을 준다고 모든 나라에 알렸다. 다이달로스가 은신하고 있던 시칠리아 카미코스의 왕 코칼로스가 이 사실을 알고 다이달로스는 코칼로스에게 실을 꿰어 주었다. 미노스는 실이 꿰어진 고둥을 받고 카미코스로 가서 다이달로스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코칼로스는 미노스를 목욕탕에 보내어놓고 다이달로스와 고민을 하였는데, 다이달로스는 끓는 뜨거운물을 욕조로 보내게 하여 미노스는 화상을 입어 죽었다.
키클라데스문명
키클라데스문명은 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 군도인 키클라데스 제도에 B.C 3000년경부터 B.C 2000년경까지 존재하였던 청동기 시대 초기 문명이다.
미케네문명
미케네문명은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북동부 아르골리스의 미케네의 유적지에서 이름을 따온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말한다. B.C 1600년부터 B.C 1100년까지의 시대이며 아티카의 아테나, 메세니아의 필로스, 테바이, 아르골리스의 티린스, 보이오티아의 테베와 오르코메노스, 테살리아의 이올코스도 미케네 문명의 주요 영역이었다. 또한 미케네인들은 크레타의 크노소스를 정복했다. 고대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 말기는 호메로스의 서시사 등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가 탄생한 시기이며 고대 그리스의 최대 전성기이다. 미케네인들은 전쟁과 무역을 통해 발전했다.
미케네의 최락은 에페이로스, 마케도니아, 에개 해의 섬들, 소아시아 해안, 키프로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미케네의 문자인 선형 B문자로 비문이 쓰인 미케네의 유물은 독일에서도 발견되었고 조지아에서 미케네의 검이 발견되기도 했다.
신화에 따르면 미케네인들은 도시국가 트로이아(트로이)를 두 번이나 패퇴시켰다고 한다. 트로이아 유적은 독일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1년 터기의 북동쪽 헬레스폰토스 해협의 히사를리크 구릉에서 유적물을 찾으며 발굴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미케네 문명은 B.C 1180년 무렵 멸망했다. 수많은 도시들이 약탈되고 학살의 흔적이 있었다. 어떤 미케네인들은 아나톨리아나 다른 그리스 섬들 혹은 키프로스로 도주하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다른 그리스인(도라이안)의 침략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에게문명
에게문명은 그리스와 에게 해애 있던 청동기 시대 문명으로 크레타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도 세 지역의 문명을 말한며, B.C 3650년부터 B.C 1100년까지의 시대이다.
1870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소아시아 서북부에 있는 트로이아로 지목되는 곳을 비롯하여 9개의 성채와 도시를 발견하며 전설속에 있던 에게 문명이 재발견되었다. 에게 문명을 미노스문명과 미케네문명(그리스와 트로이를 포함)으로 크게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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