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로마 공화정 중기 마케도니아 전쟁와 마케도니아의 멸망

GoodFortune 2019. 10. 1. 10:47
반응형

마케도니아 전쟁(B.C 214 - 148)

마케도니아 전쟁은 지중해 동부의 로마 공화국과 그리스 동맹국이 그리서 여러 왕국과 싸운 전쟁이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지중해에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마케도니아 제국과 네 차례 전쟁 중 두번째 전쟁과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전쟁이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다.

 

B.C 200 년경 마케도니아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B.C 215 - B.C 205)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로마 제국과 연합한 아이톨리아 동맹과 페르가몬(현재 터키지역)의 아탈로스 1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중인 틈을 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서부(알리톨리아 동맹 지역)로 영토 확장의 기회를 포착했다. 이는 파로스(그리스 에게 해 키클라데스 제도의 섬)의 통치자 데메트리우스의 영향이었는데, 데메트리우스는 B.C 229년 1차 일리리아 전쟁이 끝난 후 일리리아 해안 대부분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2차 일리리아 전쟁으로 패하자 필리포스에게로 달아났다.

알리톨리아와 전쟁 중인 필리포스는 포에니 전쟁의 트라시메노호 전투에서 한니발이 로마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데메트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데메트리우스는 알리톨리아와 화해를 하라고 조언을 하였고, 필리포스의 관심을 일리리아와 이탈리아로 돌렸다. 필리포스는 아이톨리아와 <포이니케 조약>을 체결하며 전쟁이 종결되었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B.C 200- B.C 196)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로마와 연합한 페르가몬과 로도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필리포스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쿠스와 협약하여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토를 차지하기로 했다.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로도스와 페르가몬은 필리포스의 도약에 당황하였고 필리포스에 대항하기 위해 로마에 지원을 요청했다. 카르타고와의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로마는 로도스와 페르가몬의 요청을 받고 특사를 파견했다. 아테네, 로도스, 페르가몬, 아이톨리아 동맹을 로마 동맹국으로 선택하고 마케도니아에 철수를 요청하였으나 필리포스는 로마의 요청을 거부했고 아테네를 공격했다.

 

로마와 필리포스와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나 처음 2년 동안 그리스 남부 도시들을 공격하지 말것을 요청했을 뿐 로마는 큰 활약이 없었다. B.C 198년 로마의 플라미니누스는 필리포스를 상대로 강력한 작전을 벌여 테살리아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필리포스는 용병군 2만5천명으로 군대를 일으켰으나 티투스의 군대에 패하였다. B.C 197년 테살리아의 키노스케팔라이전투에서 플라미니누스의 군대가 필리포스 군대를 물리치며, 필리포스는 로마의 조건대로 평화조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필리포스는 그리스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땅을 포기하기로 동의했다.

 

셀레우코우스 동맹국(빨강)과 로마 동맹국(파랑)

 

셀레우코스 전쟁 / 로마-시리아 전쟁 (B.C 192- B.C 188)

셀레우코스 전쟁은 로마공화정과 셀레우코스 제국 연합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셀레우코스제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가운데 헬레니즘의 계승 왕국 중 하나이다.

B.C 203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5세와 셀레우코스 안티오쿠스 3세가 협약을 통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영토를 차지하고자 하였다. 마케도니아가 로마와 2차 마케도니아전쟁을 치룰 때, 안티오쿠스는 시리아전쟁에서 프롤레마이오스의 군대와 코엘레-시리아에서 싸우고 있었고, B.C 201년 파니움 전투에서 이집트를 격파하고 코엘레-시리아는 안티오쿠스의 손에 들어갔다. B.C 195년 안티오쿠스의 딸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의 결혼으로 평화가 찾아왔고, 안티오쿠스는 그리스를 점령하려는 시도를 했다.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티레로 갔다가 로마와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안티오쿠스의 궁전으로 갔다.

셀레우코스 전쟁 이후 영토

 

로마는 제2차 마케도니아전쟁 후에 그리스에 주둔하고 있다가 B. 195년 스파르타를 물리진 후 그리스에서 철수했다. B.C 192년 아이톨리아 동맹의 도시를 중심으로 그리스에서 반로마 세력이 조성되었고 안티오쿠스는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갔으나 로마군에 패하였다. 로마-로디아 연합 함대는 에우리메돈 전투와 미오네수스 전투에서 한니발이 지휘한 셀레우코스 함대를 격파했다. 로마군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셀레우코스를 추격했는데, 이 순간이 로마가 아시아에 최초조 진입했던 순간이었다. 로마-페르가몬 연합 육군은 마그네시아에서 안티오쿠스를 물리쳤다. 이 전쟁으로 안티오쿠스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타우루스 산맥 서쪽의 영토를 포기해야 했다.

로마 동맹국 로도스는 카리아와 리키아 영토를 차지하였고, 페르가몬은 리키아 북부와 소아시아의 안티우코스 영토를 차지했다.

로마-셀레우코스 전쟁으로 셀레우코스는 멸망의 길로 갔다. 동부의 파르티아와 서부의 그리스, 남부의 유대도 점점 강해지며 셀레우코스를 위협했고, 다음 세기 파르티아와 폰투스에게 분할되는 과정에서 붕괴되었다.

 

 

트라키아 영토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B.C 172 - B.C 168)

제2차 마케도니아에서 패한 마케도니아는 이후 로마의 동맹국이 되어 로마-시리아 전쟁에서 로마를 지원하며 친로마 정책을 펼쳤다. B.C 179년 필리포스가 사망한 후 페르세우스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페르세우스는 발칸반도의 트라키아를 대비하는 명분으로 군사력을 키웠으나 로마는 마케도니아의 세력이 부활하여 그리스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로마는 페르세우스와 <칼리니쿠스 전투>에서 패하며 3000명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 페르세우스는 평화 조약 체결을 요청했지만 로마는 거부했고, B.C 170년 마케도니아를 재침공했지만 페르세우스는 또 다시 로마군을 격퇴했다.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개입을 물리치고, 그리스에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페르세우스는 셀레우코스와 페르가몬에게 협력을 요청했으나 실패하였고, 일리리아 겐티우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B.C 168년 로마의 집정관 아이밀리우스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한 부대를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마케도니아 서부로 진입시켰다. 이를 알아챈 페르세우스는 카테리니에 진을 세웠다. 이때 아이밀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그리스 본토로 상륙하여 발칸 반도를 북상하다가 카테리니에 진을 치고 있는 마케도니아 군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월식이 있었는데 아이밀리우스는 로마 병사들에게 월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 로마군은 동요하지 않았으나, 마케도니아 군은 월식이 왕국의 종말을 알리는 징조로 여기고 사기가 떨어졌다고 한다.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피드나 전투가 시작되었다.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는 로마군 진지를 향했고, 로마는 최소한의 응전만 하면서 후퇴하였다. 팔랑크스가 오를쿨루스 산록까지 전진하였을 때 말랑크스의 대형이 무너진 상태였고, 로마는 이 틈을 타 공격을 하였다. 팔랑크스가 붕괴되자 페르세우스는 도망을 갔고, 한시간 가량 벌어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부대의 2만5천 군을 소탕했다. 이 전투에는 아이밀리우스의 아들로 스키피오 가문의 양자가 되었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참전했다.

 

페르세우스는 펠라까지 달아났는데 주민들은 페르세우스를 내쫓았다. 사모트라키 섬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아이밀리우스에게 항복하였다. 마케도니아 왕국에 가담한 도시는 약탈당하고 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로마는 중립을 지키며 마케도니아를 지원하지 않았던 이피로스도 공격하여 시민 15만명을 노예로 끌고 갔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소멸하였고, 4개의 자치령으로 분할되었다.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B.C 150 - B.C 148)

B.C 149년 안드리스쿠스가 페르세우스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마케도니아의 왕국의 재건을 꾀하였다. 로마는 재빠른 군대 파견을 하여 안드리스쿠스 세력을 제압하였다. 전쟁 후 로마는 그리스에서 철수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B.C 146년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