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 왕조는 1485년부터 1603년 근대 전기 시대를 말한다.
튜더 왕조는 헨리 튜더로 부터 시작된다.
헨리 7세
1457~1509 재위 1485~1509
웨일스 가문의 후예인 오웬 튜더가 하급 귀족으로 전락하여 헨리 5세의 왕비인 캐서린(프랑스의 왕녀 발루아의 캐서린)의 경비병이 되었다. 헨리 5세가 죽은 후 캐서린과 오웬 튜더는 결혼하여 에드먼드 튜더와 재스퍼 튜더를 낳았다. 에드먼드 튜더는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하여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헨리 튜더이다. 마거릿은 에드워드 3세의 후손으로 당시 랭커스터 가문이나 요크 가문의 혈통이 다 끊어진 상태에서 헨리는 랭커스터 가문의 혈통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1483년 헨리 튜더가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헨리 7세로 즉위하면서 튜더 왕조가 열리게 된다.
왕위에 오른 헨리 7세는 분열된 왕국을 통일하기 위해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며 두 가문의 화합을 이루고 장미전쟁을 종식시킨다.
헨리 8세
1491.6.28 ~ 1547.1.28 재위 1509.4.21~1547.1.28
헨리 8세는 여성 편력과 여섯번의 결혼으로 유명하다. 형 아서 왕자가 결혼 후 6개월만에 사망하고, 다음해 어머니인 엘리자베스가 출산 중 사망하면서 헨리 왕자는 할머니인 마거릿 보퍼트 손에 길러졌다.
형 아서 왕자와 결혼한 캐서린은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와 카스틸의 이사벨라 1세의 딸이었는데 헨리 7세는 아서 왕자가 죽자 헨리 7세는 캐서린을 동맹을 위해 헨리 왕자와 약혼시켰다. 아서 왕자가 병약하여 결혼생활 시작을 못하여 혼인을 무효화했다고 한다. 이후 헨리 7세가 사망하자 헨리 8세는 캐서린과 결혼을 한다.
캐서린은 1511년 첫 아들을 낳았으나 몇 주만에 사망하였고, 이후 다섯번의 임신과 유산을 하며 생존한 아이는 메리 공주 뿐이다. 헨리 8세는 캐서린의 시녀인 앤 볼린하게 끌려 캐서린을 딸과 함께 왕궁에서 쫓아내고 앤 볼린과 1533년 비밀리에 결혼했다. 앤은 그해 아이를 낳았으나 공주인 엘리자베스였으며 왕자를 얻지 못한 헨리 8세는 실망하며 앤에게서 마음이 떠난다. 앤을 제거하려던 세력들은 앤을 간통죄와 근친상간죄를 뒤집어씌워 런던탑에 가두었고, 그녀는 1536년 참수되었다.
제2계비인 제인 시모어는 궁녀출신이었다. 제인은 왕비가 된 후 헨리8세의 첫딸 메리 공주의 신분 복원을 간청했고, 부녀 사이를 화해시키기도 했다. 제인은 1537년 아들 에드워드를 낳았으나 출산 후 2주만에 사망했다.
제3계비인 클레베 요한 3세의 딸 앤은 신방도 치르지 못하고 6개월만에 이혼하였는데 영국에 머무르며 왕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제 4계비인 캐서린 하워드는 제3계비의 시녀였으며 제2계비 앤 볼린과 외사촌 사이였다. 19살인 캐서린은 활기차고 발랄했으나 자유분방하여 정부를 두었다고 한다. 헨리 8세는 캐서린의 두 정부를 잡아 중형에 처하기도 하였는데 캐서린은 결국 간통죄로 런던탑에 갇혀 후 참수되었다.
마지막 왕비인 제 5계비 캐서린 파는 헨리8세의 자녀들의 가정교사였다. 캐서린 파는 두번의 결혼 경력이 있었으며 두번째 남편의 병간호 중이었다. 헨리 8세는 아픈 남편이 있는 캐서린 파에게 선물 공세를 하여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캐서린 파는 헨리 8세의 세 자녀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
에드워드 6세
1537.10.12~1553.7.6 재위 1547.1.28~1553.7.6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큰 외숙인 에드워드 시모어의 섭정을 받았다.
병약했던 에드워드 6세는 무리한 순례 행사로 지병이 악화되어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제인 그레이
시아버지인 존 더들리의 계략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가 9일만에 폐위되었다. 존 더들리는 강력한 신교도로 메리가 즉위하면 자신이 모든 권력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헨리 7세의 외증손녀 제인 그레이를 아들 길퍼드와 결혼시켜 왕위에 올렸다. 독실한 신교도였던 에드워드 6세도 누이인 메리가 집권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왕녀 제인 그레이가 계승될 수 있도록 법을 승인해주었다. 메리를 왕위에 올리려는 군사에 의해 왕위에서 밀려났고 1553년 참수형을 선고받았지만 메리1세의 선처로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다음해 메리 1세에 대한 반란 사건에 연류되어 처형받았다.
메리 1세
1516.2.18~1558.11.17 재위 1553.7. 19 ~ 1558.11.17
1553년 이복동생 엘리자베스를 대동하여 런던에 입성한 메리는 잉글랜드의 첫 여왕이다. 어머니 캐서린의 명예회복을 위해 어머니의 종교였던 로마 가톨릭교를 부활시켰다. 이 때 수많은 신교도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여 '피의 메리'라고도 불린다. 어머니와 함께 쫓겨나 왕궁 밖에서 살던 메리는 왕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엘리자베스 공주의 시중을 드는 등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 남편 필립 2세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상상임신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
1533.9.7~1603.3.24 재위 1558~1603
튜더 왕조의 마지막 왕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제1계비 앤 볼린의 딸이다. 메리 여왕에 의해 런던탑에 갇혀 어린 시절을 보내다 왕위에 올랐다. 45년 동안 여왕의 자리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를 크게 번영시켰고 영국 역사의 황금시대로 칭송되어 왔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 배우자나 자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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