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통일신라 후삼국

신라의 멸망 53대 신덕왕과 마지막 경순왕 가계도

GoodFortune 2019. 9. 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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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53대 신덕왕(912-917) 박경휘는 아버지 박예겸과 어머니 정화부인의 아들이다. 혹은 박예겸은 양부이며 친부는 각간 박문원이라고도 한다. 52대 왕인 효공왕 김요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매형이 되는 박경휘가 왕위에 올랐다. 912년 왕위에 올랐을 당시 후고구려 궁예와 후백제 견훤 세력으로 신라는 쇠퇴시기였다. 916년 후백제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했으나 무찔렀다. 신덕왕은 917년 승하하였고, 그의 아들 박승영이 왕위에 올랐다.

 

신라 하대 가계도

 

54대 경명왕(917-924) 박승영은 신덕왕과 의성왕후의 장남이다. 경명왕이 즉위했을 당시 신라는 경주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데 불과했다. 918년 현승의 반란으로 신라는 더욱 위태해졌다. 그해 왕건이 추대되고 궁예가 암살되면서 왕건과 견훤이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왕비는 각간 김대존의 딸이며 아들 8명을 두었다. 장남 박언침은 밀양 박씨의 시조, 차남 박언성은 고령 박씨의 시조, 3남 박언신은 함양 박씨의 시조, 5남 박언창은 상주 박씨의 시조, 6남 박언화는 전주 박씨, 무안 박씨의 시조, 7남 박언지는 순천 박씨의 시조, 8남 박언의는 월성 박씨의 시조이다.

 

 

55대 경애왕(924-927) 박위응은 신덕왕과 의성왕후의 차남이다. 형인 경명왕의 아들들이 나이가 어렸기에 왕위를 이어바닸다. 경애왕은 고려와 동맹을 맺으려 하였지만 왕건의 세력이 점차 커지자 925년 고울부장군 능문이 항복하였고 927년 왕봉규 등이 왕건에게 항복했다. 927년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후백제 군대에게 잡혔다고 알려져있다. 견훤은 경애왕에게 자살을 강요하여 경애왕은 자살하였고 김부가 경순왕으로 왕위를 승계했다.

 

56대 왕이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 김부는 김알지의 27대손이며 46대 문성왕의 5대손이다. (문성왕 - 김안 - 김민공 - 김실홍 - 김효종) 아버지는 김효종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 계아태후이다. 아버지 김효종은 신라시대 화랑의 거두이다. 견훤이 경애왕에게 자살을 강요하여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으며, 당시 경애왕의 자식들이 살아있었는지, 화백 회의의 추대를 받아 즉위했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 바 없다. 왕비 죽방부인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은 정학히 기록되지 않았다. 후대에 장남을 마의태자, 차남을 김황이라 하였다.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신라는 쇠퇴하였기에 경순왕은 왕건 편에 기울었다. 931년 고려 왕건의 알현이 있었고, 935년 고려에 양국하기로 결심하였다. 당시 두 왕자와 신하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935년 11월 고려 왕건에게 국서를 바치며 신라는 멸망했다. <사기>에 따르면 경순왕의 장남은 경순왕이 고려에 양국하자 처자를 죽이고 개골산에 들어가 흰 마의를 입고 초식하다 생을 마쳤다고 하여 마의 태자라 불렀다고 한다. 둘째 왕자 또한 처자를 버리고 형을 따라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935년 고려 태조의 첫째 딸인 낙랑공주(안정숙의공주) 왕씨와 아홉째 딸인 부인 왕시를 후비로 맞이했다. 또한 고려 왕건도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의 딸을 후비로 맞이하였는데 제5왕후인 신성왕후 김씨이다. 신성왕후는 아들 왕욱(안종으로 추존)을 낳았는데 그는 고려 8대왕 현종의 아버지이다. 낙랑공주와의 사이에서 7명의 아들을 두었다. 낙랑공주가 낳은 딸은 고려 태조의 손자인 경종과 혼인한 헌숙왕후 김씨이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부터 5대 경종까지 살았으며 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영향력이 컸다.

 

 

아래는 신라 하대 왕계보이다.

 

신라 하대 왕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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