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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왕실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가계도 (필리프 국왕과 엘리자베트 왕세녀)

GoodFortune 2022. 10. 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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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은 독일 중동부에서 시작되었다. 벨기에 정치권의 제안을 수락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 1세는 독립 국가가 된 벨기에의 초대 국왕이 되었고, 1831년 벨기에 왕실이 열렸고 지금의 필리프 국왕까지 이어지고 있다.

 

 

레오폴 1세

1790~1865 재위 1831~1865

 

프란츠 폰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과 아우구스테 로이스 추 에베르스도르프 백작부인의 4남으로 벨기에 초대 국왕이다.

잉글랜드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1816년 영국 조지 4세의 딸 웨일스 공녀 샬럿 오거스타와 결혼하였으나 1년반만에 사망하였다. (샬럿 공주는 조지 4세의 유일한 외동딸이었으나 일찍 사망하며 여왕의 자리를 놓치게 되었다) 레오폴은 조카 알베르트를 외조카인 빅토리아 여왕과 혼인 시켜 잉글랜드 왕실에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을 올렸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 조지 5세는 독일 출신의 가문의 이름을 윈저로 변경하여 지금의 영국 윈저 왕조를 이루었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의 딸 오를레앙의 루이즈마리와 두번째 결혼을 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요절하였고 차남 레오폴 2세가 훗날 왕위를 잇는다.

레오폴은 영국에 머무르다가 그리스 국왕으로 추대받았으나 거절하였고 1831년 벨기에로 가서 왕위에 올랐다. 레오폴은 벨기에를 독립 왕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네덜란드의 빌럼 1세에 대해 영국,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대항하였다. 레오폴은 재위 기간 동안 신생국 벨기에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고, 외교적 수완을 발휘에 열강의 지지를 얻어내며 1839년 런던 조약을 통해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냈다.

1865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레오폴 2세

1835~1909 재위 1865~1909

 

레오폴 1세와 프랑스 오를레앙의 루이즈마리의 아들이다.

1853년 마리 헨리에테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 레이폴은 어린 시절 연못에 빠진 후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1902년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할 뻔 하였으나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레오폴 2세는 해외 식민지들이 국가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고 식민지 영토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모험가 헨리 스탠리 경을 앞세워 아프리카에 '콩고 자유국'을 세우고 1884년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민들을 노예화 하고 할당량을 못채우면 신체를 절단하는 등 학살을 해 '콩고의 학살자'라고 불리는 등 잔혹한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08년 벨기에 정부는 레오폴 2세에게 콩고 자유국에 대한 지배권을 가져왔고 '벨기에령 콩고'로 명칭이 바뀌면서 온정주의를 펼쳤다. (벨기에령 콩코는 1960년에 독립했다.)

1909년 레오폴 2세가 사망했을 당시 유해가 시나를 통과할 때 벨기에 시민들은 야유를 퍼부을 정도로 '콩고의 학살자' 레오폴은 벨기에의 역사에 수치를 남겼다. 아들이 일찍 사망하며 왕위는 동생 필립의 아들 알베르 1세에게 이어졌다.

 

 

알베르 1세

1875~1934 재위 1909~1934

 

레오폴 2세의 조카로 플랑드르 백작 필리프의 아들이다. 1909년 레오폴 1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1914년 독일 빌헬름 2세의 최후 통첩을 거절하여 독일군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플랑드르 남서부를 제외한 벨기에 전역을 차지하였고 알베르 1세는 군사와 함께 남아서 프랑스-벨기에의 북군 사령관을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벨기에의 재건에 힘썼다.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와 결혼하여 레오폴 3세를 두었다.

1934년 산행 중 떨어져 사망했다. 

 

레오폴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 (1926년)

레오폴 3세

1901~1983 재위 1934~1951

 

알베르 1세와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의 아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최전방에서 싸웠다. 1926년 스웨덴 구스타프 5세의 조카 아스트리드 공주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아스트리드와 연애결혼을 해 화제가 되었는데 공식행사에서도 손을 잡고 다니며 사이가 좋았다. 

1934년 아버지 사망 후 왕위에 올랐다. 1935년 레오폴이 운전을 하던 차가 사고가 나며 아스트리드 왕비는 사망하였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수도에 남아 대항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에 항복해 국내외 비난을 받았다. 이 일로 배신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동상에 욕설을 적기도 했다.

그 와중에 선박회사를 운영하던 앙리 벨스의 딸 릴리안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거행해 국민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릴리안은 1남 2녀를 낳았다. 벨기에 왕실 가족들은 독일군에 의해 오스트리아로 추방당했다가 1950년 벨기에로 귀국했다. 그의 귀국을 반대하는 총파업이 전국에 벌어지자 1951년 아들 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했다.

 

 

보두앵

1930~1993 재위 1951~1993

 

레오폴 3세와 아스트리드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1935년 차사고로 사망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 레오폴 3세가 독일에 항복을 하고 릴리안와 결혼을 한 일로 비난을 받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 레오폴 3세는 추방되었다. 1950년 귀국한 레오폴 3세는 이듬해 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하였다.

1960년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과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5번의 임신이 있었지만 모두 유산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1960년 식민지 콩고를 독립시켰다. 콩고에 자유를 부여하고 현지에서 벌어진 독립 축하행사에 참여해 국가적 과오를 씻어내려 노력하였다.

42년간 벨기에의 국왕 자리에 있었으며 1993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많은 벨기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왕궁으로 찾아와 꽃을 두어 추모하였다.

 

 

알베르 2세

1934~ 재위 1993~2013

 

레오폴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의 차남이다. 1962년부터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벨기에 대외 무역 사무소의 명예의장을 지냈다. 1993년 형 보두앵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왕위를 계승했다.

파올라 데 루포 디 칼라브리아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았다. 2013년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왕위에서 물러나 아들 필리프 1세(현재 벨기에 국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필리프

1640~ 재위 2013~

 

현재 벨기에의 국왕으로 알베르 2세와 파올라 왕비의 장남이다. 마틸드 왕비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었으며 현재 왕위 계승자는 장녀 엘리자베트 공주이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벨기에 최초 브라반트 여공작인 동시에 유럽에서 왕위 계승녀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공주 중 한명이다. 네덜란드의 오라녜 여공,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여공, 스웨덴의 베스테르예틀란드 여공작이 현재 유럽의 왕위계승자이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2020년 벨기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벨기에 필리프 1세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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