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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오라녜나사우 왕가 빌럼알렉산더르 가계도

GoodFortune 2022. 10. 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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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럼 1세

1772~1843 재위 1815~1840

 

네덜란드 연합 왕국 오라녜나사우 왕가의 초대 국왕으로 오라녜 공작 빌럼 5세와 프로이센의 빌헬미나의 아들이다.

1795년 프랑스가 네덜란드 공화국을 침공하여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809년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오스트리아군에 복무하였고 이후 1812년 프로이센의 궁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다.

1813년 네덜란드인들이 프랑스 통치에 저항하자 빌럼은 네덜란드 공화국의 왕자가 되었고 1815년 네덜란드 연합 왕국(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초대 국왕으로 올랐다. 

왕위에 오른 빌럼 1세는 은행을 설립하는 등 경제 부흥을 위해 힘썼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동등한 대표권이 주어지자 벨기에인들을 네덜란드와의 연합에 반대하였다. 벨기에의 자유주의와 가톨릭 당파들은 빌럼 1세에 대립하여 1830년 반란을 일으켰고 1831년 독립국으로 선언하였다. 빌럼 1세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분리를 반대하였지만 네덜란드 국민들은 빌럼 1세에 반기를 들고 1840년 빌럼 1세는 퇴위하여 베를린으로 망명하였다.

 

 

 

빌럼 2세

1792~1849 재위 1840~1849

 

빌럼 1세와 프로이센의 빌헬미나의 아들로 179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816년 러시아 황제 알렌산드르 1세의 누이이자 파벨 1세의 딸 안나 파블로브나와 결혼하였다. 빌럼 2세는 벨기에에서 인기가 있었으며 아버지 빌럼 1세는 그를 벨기에 브뤼셀로 보냈다. 벨기에가 독립국 선언을 한 후 레오폴 1세가 왕위에 올랐고, 빌럼 2세는 네덜란드군을 이끌고 레오폴 1세의 군대와 맞섰다.

1840년 아버지가 퇴위하며 네덜란드 국왕 자리에 올랐다. 1848년 유럽의 혁명 운동으로 위협을 느껴 자유주의자들과 타협하여 왕권을 제한하는 새 헌법을 세우기도 했다.

프로이센의 빌헬미나와 결혼하여 4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 빌럼 3세가 왕위를 이었다.

 

 

빌럼 3세

1817~1890 재위 1849~1890

 

빌럼 2세와 러시아의 안나 파블로브나의 장남이다.

이종사촌 뷔르덴베르크의 소피와 결혼하여 3남을 낳았고 소피가 사망하자 발데크피르몬트의 엠마와 결혼하여 1녀를 낳았다.

1849년 아버지 빌럼 2세가 사망하며 왕위에 올랐다. 빌럼 3세는 보수주의적이었지만 자유주의파들의 집권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1867년 룩셈부르크를 프랑스에 팔아넘기려 했지만 프로이센 왕국의 반대로 실패했고, 이후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다. 뷔르덴베르크의 소피가 낳은 3명의 왕자들이 차례로 사망하며 두번째 부인 엠마의 딸 빌헬미나가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빌헬미나 여왕 - 율리아나 여왕 - 베아트릭스 여왕

 

빌헬미나

1880~1962 재위 1890~1948

 

빌럼 3세와 발데크피르몬트의 엠마의 딸이다. 아버지 빌렘 3세의 사망으로 10살의 나이에 여왕이 되었다. 즉위 초 어머니 엠마가 섭정하다가 1898년부터 친정을 시작했다.

빌헬미나가 여왕에 오르며 네덜란드 왕실은 빌헬미나 율리아나 베아트릭스 3명의 여왕이 네덜란드를 통치하며 123년동안 여왕의 시대였다. 

1901년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헨드릭(하인리히)과 결혼하였다. 헨드릭은 러시아 파벨 1세의 고손자로 둘은 7촌 사이가 된다. 독일 출신의 하인리히는 이름도 네덜란드식인 헨드릭으로 개명했다.

빌헬미나는 두번의 유산 끝에 1902년 사산된 아들을 낳았는데 이로 인해 후계가 문제가 되었는데, 둘 사이에 8년만에 외동딸 율리아나가 태어났다. 빌헬미나는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성격으로 헨드릭과 성격차이가 심했다. 헨드릭은 여왕의 남자로 살며 불륜을 저지르고 사생아도 있었다고 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네덜란드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협상국이 독일을 봉쇄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 퇴위당한 빌헬름 2세의 망명을 받아주기도 하였다. 망명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의 도른 하우스에서 지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침공해오자 영국 조지 6세가 파견한 구축함을 타고 영국으로 망명했고, 네덜란드는 나치 치하에 들어갔다. 빌헬미나 여왕은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심야 라디오 방송을 하며 아돌프 히틀러를 비난하고 네덜란드 국민들의 저항을 촉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네덜란드로 귀국한 여왕은 건강이 악화되었고 3년 후 1948년 57년의 재위를 끝내고 율리아나에게 양위했다. 

 

 

율리아나

1909~2004 재위 1948~1980

 

빌헬미나 여왕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헨드릭의 외동딸이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의 왕비 알렉산드리네와 독일의 빌헬름 황태자의 체칠리에 황태자비와 친사촌이다. 1937년 리페비스터펠트의 베른하르트와 결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남편과 딸들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을 떠났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4녀를 두었으며 셋째딸은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세계대전 종결 후 네덜란드로 돌아왔으며 1948년 어머니 빌헬미나가 건강이 악화되어 여왕 자리를 물려받았다.

차녀 이레네 공주는 부르봉-파르마 공 카를로스 우고와 결혼하였는데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의 공주가 가톨릭 교도와 결혼다는 점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레네는 개종하고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며 결혼하였지만 1981년 이혼했다. 3녀 마르가레트 공주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는데, 캐나다에서 태어날 경우 네덜란드-영국 이중국적자가 된다. 네덜란드 왕위계승법은 이중국적자의 계승을 금지하였기에 이는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캐나다 의회는 특별법으로 '율리아나 공주가 입원한 오타와 시민병원 산부인과병동 병실 4칸에 캐나다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다' 라고 하여 네덜란드 국적을 갖게 되었다.

율리아나 여왕은 1980년 장녀 베아트릭스에게 양위하고 2004년 사망하였다.

 

율리아나 왕비의 가족사진

 

베아트릭스

1938~ 재위 1980~2013

 

율리아나 여왕과 베른하르트 공의 장녀이다. 1948년 어머니가 여왕에 즉위하자 왕위상속녀가 되었다. 1966년 외교관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와 결혼하였는데 독일 태생인 클라우스는 나치 소년단에 가입한 적이 있었기에 네덜란드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당시 결혼식에는 다른나라 왕족이나 귀족들이 시위대에게 봉변을 당할까 걱정하여 참석하지 않을 정도였다. 결혼 다음해 빌럼알렉산더르 왕자를 낳으며 네덜란드의 왕위상속자가 남성이 되었다. 베아트릭스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3남을 두었다.

1980년 율리아나 여왕이 양위하며 베아트릭스는 여왕에 즉위했다. 33년 재위를 마치고 2013년 아들 빌럼알렉산더르에게 양위했고 아직 생존하고 있다.

 

빌럼알렉산더르 가족사진

 

빌럼알렉산더르

1967~ 재위 2013~

 

베아트릭스 여왕과 클라우스 공의 장남이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박람회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평민 금융 전문가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만나 2002년 결혼했다.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아르헨티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정권에서 농업부 장관을 지낸 독재 정부 각료였기에 결혼에 반발이 있었다. 빌럼알렉산더르는 여러 비난에도 아내를 보호하려고 애쓴 애처가로 유명해졌다.

2013년 어머니 베아트릭스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아 즉위하였다.

막시마 왕비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어 왕위상속자는 장녀 카타리나아말리아(2003~) 이기에 네덜란드는 다시 여왕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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