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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50

안동김씨가 세운 왕 강화도령 철종

철종 1831-1863 재위 1849-1863 철종은 사도세자(장조, 장헌세자)의 아들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 광의 서자이다. 생모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 철종의 아버지인 이광은 본부인 최씨에게서 아들 회평군으로 추봉된 원경을 낳았고 첩 염씨에게서 원범을 낳았다.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은언군은 홍국영이 상계군(은언군 아들)을 정조의 후사로 추대하려던 사건과 정조 사후 부인 송씨와 며느리인 신씨가 천주교를 비밀리에 신봉하던 것이 적발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당한다. 이후 순조는 이복동생인 은언군을 살리려고 노력한 아버지 정조의 유지를 받아들여 은언군의 자녀들을 석방시키려고 노력했다. 1817년 순조는 강화도에 은언군 아들들의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순조22년(1822) 위리안치형에서 형을 감형받아..

세도정치 속에서의 헌종

헌종 1827-1849 재위 1834-1849 효명세자,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의 아들로 순조30(1830)에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조부인 순조가 재위34년(1834)에 세상을 떠나자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헌종의 나이가 어리기에 왕실의 가장 어른인 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순조의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외척 안동 김씨와 효명세자(익종)의 비인 왕대비 신정왕후의 외척 풍양 조씨가 정권을 쥐고 있던 세도정치 상황이었다. 순조는 안동 김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을 며느리 삼아서 안동김씨의 독주를 막고자 하였다. 헌종 즉위후에도 외할아버지인 조만영은 호위대장 어영대장 훈련대장을 역임하며 왕실을 보호했다. 헌종의 왕비는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 효현왕후와 계..

비운의 세자 효명세자와 힘없는 임금 순조

순조 1790-1834 재위 1800-1834 효명세자 (익종으로 추대) 1809-1830 순조는 정조와 후궁 수빈 박씨의 아들이다. 의빈 성씨의 아들인 문효세자가 5세에 죽고, 정조24년(1800)에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그해 6월에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당시 증조부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경주 김씨)가 왕실의 어른이었으므로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순조가 즉위한 후 조선은 세도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유력한 가문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자 국정의 혼란과 민생 파탄이 심해졌는데, 유명한 가문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였다. 순조의 왕비는 순원왕후로 영안부원군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이다. 정조24년 정조의 뜻에 의해 간택되었는데,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연기되었다가 순조2년(1802)에 왕비..

조선의 개혁정치가 정조

경종 이전까지는 신하들 사이의 투쟁이었지만, 경종 부터는 신하들은 당이 다르면 임금도 적으로 삼았다. 경종이 소론 군주였다면 영조는 노론의 군주였다. 반 노론이었던 사도세자는 영조와 노론에 의해 뒤주 속에서 죽었고, 그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를 이었다. 영조에게 다른 아들이 있었다면 다른 아들이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겠지만, 영조에게는 사도세자가 유일한 왕자였다. 사도세자가 죽을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11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봤다. 사도세자가 죽고 영조는 세손이었던 정조를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켜 세손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노론 세력은 세손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사도세자의 후궁인 양제 박씨가 낳은 아들인 은전군을 지지했다. 양제 박씨..

당쟁의 대립 속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

경종 (조선 20대 임금) 1688-1724 재위 1720-1724 경종은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었다. 경종의 비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 단의왕후와 계비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였다. 단의왕후는 숙종22년(1696)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경종 즉위 전에 소생없이 죽었다. 선의왕후는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후로 책봉되었다. 경종이 태어나던 숙종14년(1688), 인현왕후 민씨가 속한 정당은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었고, 희빈 장씨가 아이를 갖자 경계했다. 희빈 장씨의 친정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하러 입궁하다가 서인들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자 숙종은 서인들로부터 원자를 지키고자, 3개월도 안된 아이를 원자로 책봉했다. 이때 경종의 원자 책봉을 송시열이 상소를 올려 정면에서 비판하였는데, 인현왕후..

예송논쟁의 중심 18대 임금 현종과 명성왕후

현종 (조선 18대 임금) 1641-1674 재위 1659-1674 효종의 유일한 아들로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종이 즉위했다. 어머니는 우의정 장유의 딸 인선왕후로, 아버지 봉림대군와 어머니가 볼모로 청나라에 있을 때 태어났다. 인조22년(1644) 귀국 후, 인조23년 아버지인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고 현종은 1649년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그해 효종이 즉위하자 왕세자가 되었다. 현종은 세자 시절 1651년 세자빈을 맞이했는데 청풍부원군 청풍 김씨 김우명의 딸인 명성왕후였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한 후 2년 후에 원자인 숙종을 낳았다.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김우명은 서인의 편에 서 있었다. 현종은 왕비 외의 후궁을 두지 않은 검소하고 소박한 왕이었다고 하는데, 명성왕후는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 현종..

북벌을 꿈꾼 효종

효종 (조선 17대 임금) 1619-1659 재위 1649-1659 효종은 인조와 인렬왕후의 둘째 아들로 인조반정 후 왕자로 책봉되고 1626년 봉림대군의 작위를 받았다. 1637년 소현세자 일행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8년만에 귀국했다. 인조23년(1645) 귀국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으면서 인조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었다.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 석철은 제주도로 유배보내지고 그곳에 얼마 안있다 죽었다. 9월 27일 봉림대군과 부인 장씨는 왕세자와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입궐하였고,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효종의 왕비는 인선왕후이다. 부인 장씨 또한 봉림대군이 청나라로 끌려갈 당시 봉립대군과 함께 볼모로 잡혀 가 8여년 간 심양에서 지내면서 아들(현종)을 낳았다. 인..

청에서 귀국한 소현세자의 두달만의 죽음

소현세자 1612-1645 소현세자는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맏아들로 태어나, 인조3년(1625)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인조5년(1627) 강석기의 딸 민회빈 강씨와 혼인하여 경선군 이석철, 경완군 이석린, 경안군 이석견, 경숙군주, 경녕군주, 경순군주 3남 3녀를 두었다. 소현세자는 인조를 대신해 청나라로 끌려가 초기 청의 수도였던 만주의 심양에서 9년이란 세월을 볼모로 보냈다. 인조15년(1637) 1월 30일 50여 명의 사람이 통곡을 하면서 남한산성을 나왔다. 이 가운데 16대 임금 인조와 소현세자가 있었다. 인조는 청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는데 3번 절하고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식이었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청나라에 완전히 항복을 하였다. 인조반정 당시 중국 대륙은 후금(청나라)와 명나라..

방계 승통의 선조의 혼란했던 조선 중기

선조 1552-1608 재위 1567-1608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왕위에 올리긴했지만 명종에게서는 후사가 없었다. 명종 비 인순왕후에게서 순회세자를 얻었지만 문정왕후보다 2년 일찍 손자를 잃었다. 순회세자는 명종18년 13살의 나이로 죽고, 문정왕후는 명종2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후 2년 후 명종이 세상을 떠났다. 명종이 위독하자 후사를 정해야 했는데, 명종은 대답할 수 없을만큼 위독했기에 명종 비 인순왕후 심씨에게 후사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종과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군(일곱째 아들, 혹은 아홉째 아들로 기록됨)의 셋째 아들 이균이 후사로 결정되었다. 이균에 대한 이야기로, 명종이 종친 자제들을 궁중에 불러 머리 크기를 알려고 한다며 익선관을 써 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때 여러 왕손들이..

9개월의 임금 인종과 문정왕후

인종 1515-1545 재위 1544-1545 명종 1534-1567 재위 1545-1567 인종은 아버지 중종과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이다. 중종10년(1515)에 윤씨는 왕자를 낳고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중종은 제2계비인 문정왕후를 왕비로 들이는데 17년간 아들이 없었가 왕비가 된지 17년만인 중종 29년에 왕자를 낳았다. 문정왕후 소생의 왕자는 경원대군에 봉해졌다. 중종15년(1520)에 책봉된 세자는 이미 스무살이었기에 경원대군과 왕위를 다툴 위치가 아니었다. 경원대군이 열살이 될 무렵 문정왕후는 자신을 지지하는 소윤 이라는 당을 만들었는데 당수는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었다. 이미 대윤 이라는 당이 있었는데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이 당수였다. 소윤이 점점 강해지며 대윤과 소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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