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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50

성종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 한씨

인수대비는 추존왕 덕종의 왕비로 소혜왕후라고도 하지만 인수대비로 더 유명하다. 인수대비는 덕종 도원군의 아내이자 월산대군과 자을산군 성종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이다. 며느리이자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를 쫓아내 죽음에 이르게 한 매정한 대비로 기억되고 있는데 이 일로 손자 연산군에게 행패를 당해 불행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대비로 지내며 '내훈'을 썼는데 여성들을 유교 윤리로 옭아맨 주범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인수대비를 둘러싼 가계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수양대군의 큰며느리였던 인수대비 한씨는 계유정난을 겪으며 세자빈이 되었고, 세조 대부터 예종, 성종, 연산군에 이르는 4대에 걸쳐 등장한다. 청주 한씨는 당대의 명문이었다. 아버지인 한확은 3남 2녀중 장남이었는데 인물이 뛰어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첫째 ..

세조 왕비 정희왕후 윤씨와 계유정난

정희왕후는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왕비이자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행한 대왕대비였다. 정희왕후의 집안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 친정아버지는 윤번은 고려 우왕 10년에 출생하였고 부인 이씨와의 사이아 3남 7녀를 두었다. 정희왕후는 아홉째였다. 파평 윤씨 집안은 여직족을 몰아내고 9성을 개척한 윤관 장군 이래로 고려의 명문거족이었고, 조선 건국시 윤호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한 공로로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사위 17명 중 4명을 파평 윤씨 가문에서 맞았다. 윤번은 음서로 벼슬길에 나아갔지만,과거에 합격하지는 못했다. 음서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조성 덕에 벼슬을 하는 것이므로 이것만으로는 주류로 행세하기 힘들었다. 윤번은 태종 때 직무를 태만히 하여 태 50대를 맞고 원래..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와 왕자의 난

원경왕후 민씨는 조선의 3대 임금 태종(태조의 5남)의 왕비이다. 조선시대에는 부계가 중요했지만, 고려 말에는 모계도 중요했었다. 민씨의 외가는 친가보다 더 대단했던 가문이다.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 왕실과 원나라 황실에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씨 외할아버지 송선은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주자였던 임유무를 처단하고 무신정권을 끝냈던 송송례의 증손자이다. 무신정권이 끝난 후, 고려 왕(충렬왕)이 원나리 황제의 사위가 되어 고려는 부마국이 되었다. 그러나 충렬왕과 충선왕이 왕위를 놓고 다툼을 벌일 때 송씨 가문은 철저히 충렬왕 편을 들었고, 후에 충선왕이 왕위에 오르며 노비가 되었다. 그러나 송씨 가문은 원나라와 관계가 두터웠는데 기황후의 증조할아버지인 기홍영의 사위가 송송례의 송염이었다. (관계..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의 건국시조 태조 이성계의 왕비로서, 사실상 조선의 제1대 왕비였다. 그럼에도 신덕왕후와 관련된 기록은 한 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태종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신덕왕후를 태조의 첩으로 간주하고 신덕왕후를 왕비로 인정하는 모든 기록과 기념물을 왜곡하고 없앴다. 태종은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도 않았고, 신덕왕후의 능을 파서 도성 밖으로 옮겼다. 선조 때의 일이나 강순일이라는 자가 선조가 탄 수레앞으로 뛰어들어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강순일은 스스로를 신덕왕후 강씨의 친정아버지 강윤성의 후손이라 소개하고 자신이 강윤성의 무덤을 돌보고 있는데 억울하게 군역이 부과되었으니 취소해달라 호소하였다. 이 일로 신덕왕후 강씨가 태조의 왕비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신덕왕후 강..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영조 (조선 21대 임금) 1694-1776 재위 1724-1776 사도세자 1735-1762 정조 (조선 22대 임금) 1752-1800 재위 1776-1800 영조는 숙종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화경숙빈 최씨다. 숙빈 최씨는 숙종의 왕비 처소에 있던 무수리였는데 숙종의 눈이 띄어 아이를 갖게 되었고 숙빈이 되었다. 1699년 연잉군에 봉해졌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하여 노론 유력자인 김창집의 종질녀로 숙종 후궁이던 영빈 김씨의 양자노릇을 하여 노론의 지지와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경종(숙종의 장자)이 후사가 없자 경종 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가 경종 4년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21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왕세제 책봉시에 경종에게 후사가 없고, 경종의 건강이 좋지 않아 후계자 삼는 일이 급하였는데 ..

숙종의 왕비들과 장희빈

숙종 (조선 19대 임금) 1661-1720 재위 1674-1720 경종 (조선 20대 임금) 1688-1724 재위 1720-1724 현종(조선 18대 임금)의 큰 아들인 숙종은 1674년 14세의 어린 나이로 왕으로 즉위하였다. 숙종 6년에 경신환국, 15년에 기사환국, 20년에 갑술환국이 일어나 그때마다 남인, 서인 사이에 정권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허적은 현종 말년에 영의정에 올랐고 현종이 승하할 때 그의 유언을 받들어 숙종을 왕위에 오르게 했는데 숙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영의정을 지내면서 서인들을 조정에서 쫓아냈고 자신이 속한 남인들의 세력을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서인과 남인은 서로의 행동을 감시하며 단서를 얻기 위해 자기의 심복을 몰래 들여보내는 것이 예사처럼 되어 있는 때였다. ..

광해군과 영창대군

광해군(조선 15대 임금) 1575-1641 재위 1608-1623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 태어났으며,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피난지였던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형인 임해군이 있었지만 광해군이 총명스럽고 효성스럽다는 이유로 세자에 지명되었다. 1606년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에게서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세자인 광해군은 위태로운상황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을 겪은 선조는 전쟁이 끝난 후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자 하였으나 병으로 위독하게 되어 1608년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영창대군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피바람이 일어나야만 했고, 그로 인해 '군..

성종과 폐비 윤씨 그리고 연산군

성종 (조선 9대 임금) 1457-1494 재위 1469-1494 연산군 1476-1506 재위 1494-1506 성종의 이름은 혈이며 세조의 손자로 의경세자(추존 덕종)와 소혜왕후 한씨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에 자산군에 봉해졌다가 뒤에 자을산군으로 고쳤다. 1469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덕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 세조의 둘째아들인 예종이 조선 8대 임금으로 올랐는데 몸이 약한 예종은 재위 1년도 넘기지 못하고 20세에 죽었다. 이때 왕실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세조의 후비 정희왕후였는데, 원로대신 신숙주의 추천으로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성종의 즉위 초기에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원로대신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 최항 등이 원상이 되어 국정을 보필하였다..

세조의 계유정난과 단종의 삶

세종(조선 4대 임금) 1397-1450 재위 1418-1450 문종(조선 5대 임금) 1414-1452 재위 1450-1452 단종(조선 6대 임금) 1441-1457 재위 1452-1455 세조(조선 7대 임금) 1417-1468 재위 1455-1468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외아들인 단종은 1441년(세종 23) 탄생하였다. 세종 30년(1448년) 8세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문종 즉위년(1450년) 8월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18일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큰아들 문종을 비롯, 수양,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대군과 정소, 정의 공주 8남 2녀를 두었다. 1452년 문종이 세상을 떠날 때 세자는 어렸고, 종실의 대군들이 강성한 것을 염..

태조 이성계와 위화도회군

1335-1408 재위 1392-1398 태조 이성계의 고려 말 활동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이성계는 고려 공민왕(1330-1374) 시기부터 급부상한 신흥무장 세력이었다. 이성계는 고려 귀족 출신이 아니라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쌍성총관부 지역에서 힘을 키워가던 변방 세력이었다. 쌍성총관부는 원나라가 1258년 고려에 침입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한 후 설치한 통치 기구였다. 철령 이북의 땅은 공민왕이 수복하기 전까지 100여년을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원래 전주 지역의 향리였는데, 가솔을 끌고 쌍성총관부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가 고려의 중앙 조정에 데뷔하게 된 것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 덕분이었는데, 공민왕이 1356년 원나라에 잃어버렸던 땅, 쌍성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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