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의 여인과 후손

GoodFortune 2021. 10. 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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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국왕

태종 이방원 (정안대군)

1367.06.13(공민왕16년) ~ 1422.05.30

태조 이성계의 5남

12남 17녀

 

재위기간

1400.11.28 ~ 1418.9.9 (17년 9개월)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와 정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5남으로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다. 이방원은 어릴 때부터 무예나 격구 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낙마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 세력을 몰아내려 하였는데, 이방원은 아버지에게 정몽주를 제거할 것을 권하였으나 이성계는 이를 반대하였다.

이방원의 <하여가> 는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한 시로 알려져있으며 정몽주는 <단심가>로 그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이방원 <하여가>

此亦何如彼亦何如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城隍堂後垣頹落亦何如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我輩若此爲不死亦何如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 <단심가>

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白骨爲塵土魂魄有無也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鄕主一片丹心寧有改理歟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를 제거한 후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조선의 국왕이 되며 이방원은 정안군에 봉해졌다. 당시 공을 세운 왕자들이 아닌 계비 신덕왕후 강씨 아들인 의안대군 이방석이 왕세자로 오르게 된다. 이에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반발하게 되었고 1398년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 등의 개국공신과 이복동생 무안대군(방번) 세자 방석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후 형인 영안군 방과을 세자 자리에 올린다.

 

정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0년 이방원의 넷째 형인 회안대군 방간이 왕위에 오를 목적으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다 실패하여 귀양보내졌으며 그해 2월 정종으로부터 왕세자로 책봉되고 11월 왕위에 오른다.

 

태종의 가계도 : 혜령군과 근녕군이 wiki에서는 바뀌어 기록에 남음.

 

이방원은 열살에 개성으로 와 태조의 계비 강씨와 함께 살았다. 성균관 대사성 민제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방원의 형인 이성계의 넷째아들 방간 또한 같은 여흥 민씨 집안과 혼인하였다. 이방원은 혼인 후 처가이자 스승인 민제의 집에서 살았는데, 결혼 이듬해엔(1383년) 문과에 급제하고 첫 딸 정순공주도 태어났다. 

 

이방원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는 왕자의 난 당시 친정 식구들과 함께 태종을 도와 왕위에 오르는데 막대한 역할을 하였으나, 투기가 심했던 원경왕후는 태종 즉위 초 태종의 축첩과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 태종1년 태종이 가까이 하는 궁인을 불러 힐문하였고, 태종2년 왕비의 여종 김씨(효순궁주)가 태종의 아이를 임신하자 감시하도록 하고 아들(경녕군)을 낳자 해산을 방해하고 모자를 사지로 몰았다. 이 사실을 13년 후에 태종이 알게되어 그 죄를 처남인 민무휼과 민무회에게 물어 그들을 숙청했다.(이 사건 뿐 아니라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그들을 숙청하였다. 원경왕후의 남동생 4형제가 모두 태종에게 사사되었다.) 태종이 의빈 권씨를 후궁으로 간택할 때에도 원경왕후는 태종의 옷을 붙들고 원망의 말을 하며 울고 식음을 전폐하여 가례색이 중지되기도 했다.

 

 

원경왕후 민씨 1365~1420(세종2년) (부 민제)

명빈 김씨 (?~1479)

   1411년 간택되었으며 남동생 김오문의 딸은 문종의 세자빈 휘빈 김씨이다.

   간택된 해 11월에 정1품 명빈에 봉해졌는데, 태종 재위시절 유일하게 빈 지위에 있던 후궁이었다.

효빈 김씨 (효순궁주) 

   원경왕후가 왕비가 되기 전 사가에서 거느리던 여종으로 태종 즉위 후, 궁에 들어와 임신하였다.

   임신 3개월째 궁에서 나와 사가에서 경녕군 이비를 낳았다.

   경녕군을 낳은 후 원경왕후와 그 동생들의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

신빈 신씨 (신녕옹주) (1377~1435)

   원경왕후의 나인 출신으로 1402년 함녕군을 낳고 1414년 신녕옹주가 되었다.

   3남7녀를 얻을 정도로 태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태종이 죽은 후 의빈 권씨와 함께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선빈 안씨 (숙선옹주) (?~1468) 

의빈 권씨 (정의궁주) (1384~?)

   성균관 악정 권홍의 장녀로 태종이 후궁제도를 법제화 한 후 맞은 첫번째 후궁이다.

   1402년 후궁을 맞으며 가례를 준비하게 했는데 원경왕후가 식음을 전폐하여 가례가 취소되었다.

   태종이 죽은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세종의 6남 금성대군을 맡아 길렀는데, 늙고 병들자 1453년(단종1)에 금성대군이 자신의 사저에 의빈을 머물 수 있도록 청하였지만, 왕이 허락하지 않아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처소에서 지냈다.

소빈 노씨 (소혜궁주) (?~1479) - 위성부원군 노영수의 손녀. 고려 우왕의 후궁인 의빈 노씨의 조카

   1411년(태종11) 명빈 김씨, 숙공궁주 김씨와 함께 간택되었다.

숙의 최씨

덕숙옹주 이씨 (숙의 이씨)

정빈 고씨 (?~1426)

숙공궁주 김씨 (?~?)

    1411년 간택되었으며, 1421년(세종3) 아버지 김점이 뇌물로 국문을 받게 되자 출궁당하여 여승이 되었다.

의정궁주 조씨(?~1454)

혜순궁주 이씨(?~1438)

신순궁주 이씨(1390~?)

덕숙옹주 이씨

혜선옹주 홍씨

순혜옹주 장씨

서경옹주

궁인 김씨

 

 

1남 양녕대군 (1394~1462) (모 원경왕후 민씨) - 수성부부인 김씨와 혼인.

    1418년(태종18년)  폐세자

2남 효령대군 (1396~1486) (모 원경왕후 민씨) - 예성부부인 정씨와 혼인

    1405년 효령군에 책봉되었으며 학문과 덕성을 이루고 활쏘기에 능숙하였다. 한다.

    불교를 좋아하여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하에 불교 보호의 역할을 하였다.

    세종 후에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에 걸쳐 장수를 누렸다.

3남 충녕대군 (1397~1450) (모 원경왕후 민씨) - 4대 국왕 세종

4남 성녕대군 (1405~1418) (모 원경왕후 민씨) - 삼한국대부인 성씨와 혼인

   1411년 성녕군에 책봉되고 14년 성억의 딸 경녕옹주와 혼인하였으나 18년 홍역에 걸려 사망하였다.

서1남 경녕군 (1403~1458(세조3년)) (모 효빈 김씨)

서2남 함녕군 (1403~1402) (모 신빈 신씨)

서3남 온녕군(1407~1454)  (모 신빈 신씨)

서4남 혜령군 (1407~1440) (신빈 신씨)

   수원의 혜령군 이지 묘역에는 아홉째 왕자 혜령군(1407~1440) 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5남 근녕군 (1411~1462)

    모친이 정빈 고씨로 기록되기도 하고(wiki) 신빈 신씨로 기록되기도 하였다(doopedia)

    전주이씨 근녕군파의 파시조이다.

서6남 희령군 (1412~1465) (모 숙의 최씨) 

서7남 후령군 (1419~1450) (모 덕숙옹주 이씨)

서8남 익녕군 (1422~1464) (모 선빈 안씨)

   태종의 막내아들로 1430년(세종12)에 익녕군에 봉해졌다.

 

1녀 정순공주 (1385~1460) (모 원경왕후 민씨) 청평부원군 이백강과 혼인

2녀 경정공주 (1387~1455) (모 원경왕후 민씨) 평원부원군 조대림과 혼인

3녀 경안공주 (1393~1415) (모 원경왕후 민씨) 길창군 권규와 혼인

4녀 정선공주 (1404~1424) (모 원경왕후 민씨) 의산군 남휘와 혼인

서1녀(5녀) 정혜옹주(?~1424) (모 의빈 권씨)

서2녀 정신옹주 (?~1452) (모 신빈 신씨)

서3녀(7녀) 정정옹주 (1410~1456) (모 신빈 신씨)

서5녀(8녀) 숙정옹주 (모 신빈 신씨)

   1453년(단종1) 남편인 정효전이 수양대군(세조)를 모해하려다 발각되어 국문을 받고 사망하였다.   1488년(성종19) 숙정옹주는 몰수된 전답과 남편의 속공노비를 돌려줄 것을 상언하였고, 성종은 이를 돌려주라고 명하였다.

서6녀(9녀) 숙혜옹주 (1413~1464) (모 소빈 노씨)

서7녀(10녀) 숙녕옹주 (모 신빈 신씨) 파성군 윤우와 혼인

서8녀(11녀) 소신옹주 (?~1437) (모 신빈 신씨)

서9녀(12녀) 경신옹주 (?~1480) (모 선빈 안씨)

   1430년(세종12) 전의위 이완과 혼인

서10녀(13녀) 소숙옹주 (?~1456) 

   소숙옹주의 어머니는 두산백과에는 신빈 안씨, wiki 에서는 신빈 신씨로 기록되었다.

서11녀(14녀) 숙안옹주 (모 김씨)

   숙안옹주의 어머니는 두산백과에는 김씨, wiki 에서는 선빈 안씨로 기록되었다.

   1432년(세종14) 황자후의 아들 황유와 혼인

서12녀(15녀) 숙근옹주 (?~1450)

   숙근옹주의 어머니는 두산백과에는 신빈 신씨, wiki 에서는 궁인 김씨로 기록되었다.

   화천군 권공과 혼인

서13녀(16녀) 숙경옹주 (1420~1494) (모 신빈 신씨)

   1432년(세종14) 윤태산의 아들 파평군과 혼인

서14녀(17녀) 숙순옹주 (모 덕숙옹주 이씨)

   태종의 막내딸로 1435년(세종17) 윤창의 아들 파원군 윤평과 혼인

   태종의 자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혼인하였다.

   묘지석이 1481년에 건립되었으므로 그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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