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조선 4대왕 세종 이도의 여인과 후손

GoodFortune 2021. 10. 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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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4대 국왕

세종대왕 이도 

1397.05.07 ~ 1450.03.30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3남

18남 4녀

 

재위기간

1418.09.09 ~ 1450.03.30 (31년 6개월)

 

 

1397년 태종과 원경왕후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도는 1408년(태종8) 충녕군에 봉해졌고, 그해 심온의 장녀 심씨와 혼인하였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공부를 좋아했다 하며, 권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책을 한시도 손에 놓지 않아 눈병으로 고생하였고 부왕 태종이 책을 모두 감추게 하기도 하였다.

 

실록에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세자 양녕대군이 몸단장을 한뒤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아랫사람에게 묻자, 충녕대군은 "먼저 마음을 바로 잡은 뒤에 용모를 닦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1418년(태종18) 형인 양녕대군이 여러가지 비행 문제로 폐세자되자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그해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상왕 태종은 세종 재위 초기 군권과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였는데, 세종의 장인 심온 등 외척세력을 제거하였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꼽히는 세종의 업적은 단연 훈민정음 창제이다. 1420년(세종2) 궁중 안에 집현전을 설치하였고 1443년(세종25)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1446년(세종28)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그럼 위대한 업적에 의해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그의 여인들과 후손들에 대해 알아보자.

1408년 이도와 혼인을 올린 심씨는 1418년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이 되었고, 즉위하자 중궁이 되었다. 세종 즉위 후 태종에 의해 아버지 심온과 숙부 심정이 역모죄로 처형당하고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친족들은 관비가 되었다. 당시 소헌왕후에 대해서도 폐비 논의가 있었으나 이미 왕자를 2명 출산하였고 임신중이었기에 세종은 그녀를 지킬 수 있었다. 소헌왕후는 1444년(세종26), 1445년(세종27) 연이어 어머니 안씨와 아들 광평대군, 평원대군을 잃으며 불교에 의지했다. 법당을 방문하고 석탑을 조성하기도 하여 당시 집현전 학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소헌왕후 심씨 (1395~1446) 심온의 장녀

신빈 김씨 (1406~1464)

   내자시의 여종이었다가 1418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이이 되었다.

   세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어 1427년(세종9) 계양군을 출산했다.

   천성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의 망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았다.

   세종 승하 후 여승이 되어 살았다.

혜빈 양씨 (?~1455) 

   내명부 궁인으로 들어왔다가 세자(문종)을 보살피던 중 세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막내아들 영풍군(1434~77)을 키울 당시 세자빈이 단종(1441~57)을 낳고 죽게 되자 경혜공주와 단종의 유모가 되었다.

   단종은 왕이 되어서도 혜빈의 처소에 자는것을 희망하였으나 수양대군이 막았다고도 한다.

   세종 승하 후 비구니가 되었다가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궁으로 들어왔으나,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금성대군과 결탁하였다는 이유로 혜빈 양씨는 유배보내졌다가 1455년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아들 영풍군도 살해당하였고 한남군은 유배지에서 병사하였다.

영빈 강씨 (?~1483)

   궁인으로 입궁하여 세종의 눈에 들어 1425년(세종8) 화의군을 낳았다.

   아들 화의군이 1455년(단종3) 금성대군, 혜빈 양씨와 관련되어 유배되면서 노비와 가산을 적몰당했다.

귀인 박씨 (장의궁주)

   안변도호부사 박강생의 딸로 1424년(세종6) 후궁에 책봉되었다.

귀인 최씨 (명의궁주)

   판돈녕부사 최사의의 딸로 1424년(세종6) 귀인 박씨와 함께 후궁 책봉되었다.

   1453년(단종1) 혜빈 양씨의 거처에 가서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숙원 이씨

상침 송씨 (1396~1463)

   딸을 낳았음에도 후궁의 첩지를 받지 못한채 사위 윤사로의 집에서 지내다 1463년(세조9) 사망하였다.

 

1남 문종 이향 (1414~1452) (모 소헌왕후 심씨)

   조선 5대 국왕으로 1417년 7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42년(세종24) 세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다.

   1450년 세종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2년 3개월만에 37세의 나이로 승하한다.

2남 수양대군 이유 (1417~1468) (모 소헌왕후 심씨)

   조선 7대 국왕 세조로 문종의 아들 단종으로부터 양위받아 왕이 되었다.

3남 안평대군 이용 (1418~1453) (모 소헌왕후 심씨)

   세종 즉위년에 태어났으며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에 능하였고 한석봉과 함께 명필로 여겨진다.

   조카인 어린 단종이 즉위한 후 수양대군과 경쟁하였으나 실패하고 1453년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육종영의 한사람(단종을 위해 세조와 맞서다 죽임을 당한 6명의 종친)

4남 임영대군 이구 (1420~1469) (모 소헌왕후 심씨)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을 지지하였다.

   개국공신 남은의 손자 남지의 딸과 혼인 하였으나 정신질환이 있어 이혼을 하였고, 의정부 우찬성 최사강의 손녀와 혼인하였다.

   차남 귀성군은 세조 대에 28세의 나이로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정희왕후에게 숙청당하여 유배되었다.

   연산군의 폐비 신씨의 외조부 / 중종의 단경왕후의 외증조부

5남 광평대군 이여 (1425~1444) (모 소헌왕후 심씨)

   학문을 좋아하여 경서에 통달하였고, 문선에 재능이 있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6남 화의군 이영 (1425~?) (모 영빈 강씨)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에 맞서 유배되었다가 3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육종영의 한사람

7남 금성대군 이유 (1426~1457) (모 소헌왕후 심씨) 

   1426년(세종8) 태어나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에게 길러졌다.

   1455년(단종3) 수양대군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 거사를 도보하다 사행되었다.

   육종영의 한사람

8남 계양군 이증 (1427~1464) (모 신빈 김씨)

   세종이 영응대군과 함께 가장 총애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복형인 수양대군을 도와 반정에 참여하였으며 부인은 한확의 딸로 소혜왕후(세조의 며느리 = 성종의 어머니 = 인수대비)의 친언니이다.

9남 평원대군 이임 (1427~1445) (모 소헌왕후 심씨)

   1445년 19세의 나이로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광평대군 사망 뒤 한달 후에 죽었다.)

10남 의창군 이공 (1428~1460) (모 신빈 김씨)

   세조의 반정에 협조하여 새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456년(세조2)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운둔생활을 하다 술병으로 사망하였다.

11남 한남군 이어 (1429~1459) (모 혜빈 양씨)

   세조 즉위 후 금성대군, 영풍군, 혜빈 양씨와 역모죄로 유배되었다

   육종영의 한 사람

12남 밀성군 이침 (1430~1479) (모 신빈 김씨)

  밀성군은 문종, 세조의 총애를 받아 익대공신 2등,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3남 수춘군 이현 (1431~1455) (모 혜빈 양씨)

14남 익현군 이련 (1431~1463) (모 신빈 김씨)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 1등에 책정되었다.

   형 계양군과 더불어 술을 자주 마시다 술병을 얻어 죽었다.

15남 영응대군 이염 (1434~1467) (모 소헌왕후 심씨)

   세종이 계양군과 영응대군을 가장 아꼈다고 하며 문종과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49년(세종31) 아내인 대방부부인 송씨에게 병이 있어 내쫓고 충선군부인과 혼인하였으나, 1453년(단종1) 송씨와 몰래 만나다 다시 재결합하였다.

16남 영풍군 이전 (1434~?) (모 혜빈 양씨)

   세종 사후 모친인 혜빈 양씨가 단종의 유모였고, 영풍군의 장인이 사육신 박팽년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1455년 유배당하였고 위리안치되었다.

   육종영의 한 사람

17남 영해군 이당 (1435~1477) (모 신빈 김씨)

18남 담양군 이거 (1439~1450) (모 신빈 김씨)

 

1녀 정소공주 (1412~1424) (모 소헌왕후 심씨)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녀로 세종의 큰 사랑을 받았다.

   관례를 치르기 전에 1424년(세종6) 완두창(마마)에 걸려 사망하였다.

2녀 정의공주 (1415~1477) (모 소헌왕후 심씨)

   7대 국왕 세조의 누나로 세조 대에 좋은 대우를 받은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의공주가 병에 걸리자 정희왕후와 함께 공주 집에 여러차례 문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창위 안맹담과 혼인하여 4남2녀를 두었다.

3녀 정현옹주 (1425~1480) (모 상침 송씨)

   영천위 윤사로와 혼인

4녀 정안옹주 (1441~1461) (모 숙원 이씨) 

   청성위 심안의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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