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태조 이성계의 여인과 후손

GoodFortune 2021. 10. 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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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대 국왕

태조 이성계

1335.10.27(충숙왕 후4년) ~ 1408.06.18

8남 5녀

 

재위기간

1392.08.05 ~ 1398.10.14 (6년 2개월)

 

이성계는 고려의 장수로 공민왕과 우왕 시대에 홍건적과 왜구 토벌의 영웅이다. 1388년(우왕14) 철령 이북 영토 문제로 명나라와 갈등을 빚자 우왕이 명나라 요동 정벌을 명한다. 우군도통사로 요동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1392년 조선을 건국했다.

 

신의왕후 한씨는 1351년 이성계와 혼인하여 6남 2녀를 낳았으며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이성계가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고향에서 자식들을 키웠으며 이성계는 개경에서 강윤성의 딸 강씨를 경처로 맞이했다. 그녀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1년 전 사망하였으며 1398년 정종 즉의 후 신의왕후로 추존되었다.

 

이성계가 경처로 맞이한 강씨는 한씨가 1391년에 사망함으로써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된다. 강씨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20살 가량 차이나는 이성계와 혼인하였다. 호랑이 사냥을 하던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우물가에 있던 강씨가 바가지에 물을 뜨고 버들잎 한줌을 띄워주었다는 일화로 그들의 첫만남이 알려져있다. 이 일화는 고려 태조와 장화왕후의 만남에 대한 설화가 동일하다.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포스팅인 이전에 좀더 자세히 했다.

2019.07.11 - [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의 건국시조 태조 이성계의 왕비로서, 사실상 조선의 제1대 왕비였다. 그럼에도 신덕왕후와 관련된 기록은 한 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태종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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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신의왕후의 장성한 왕자들을 제치고 정도전과 연합하여 자기 소생의 의안대군(방석)을 왕세자로 만들었다. 이 일은 신의왕후의 아들들의 불만을 갖게 하였고 1396년 신덕왕후가 사망하자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의안대군 뿐 아니라 신덕왕후의 아들들은 모두 제거되고 사위는 살해당하며 딸 경순공주는 여승이 되었다.

이방원은 1409년(태종9) 태조 사후 신덕왕후의 능 정릉을 사대문 밖으로 이전시켰고, 묘의 봉분을 깎아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말도록 하였다. 또한 그녀를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태조는 신덕왕후 사망시 몹시 애통해하며 능 옆에 암자를 지어 매일 아침저녁마다 향차를 바치게 하다 1년간의 공사를 거쳐 흥천사를 지어주기도 했다. 흥천사가 완공되자 능과 절을 둘러보는게 일상사가 되었고, 신덕왕후 소생 왕자들과 함께 저녁을 보낸 후 절의 종소리가 나야만 침소에 들 정도로 그녀에게 정성을 다하였다.

 

신의왕후 한씨 (1337~1391) 태조의 첫번째 아내로 정종, 태종의 생모이며 조선 건국 전 사망하였다.

신덕왕후 강씨 (1356~1396) 태조의 두번째 아내로 조선 최초의 왕비이다.

성비 원씨 (?~1449)

   신덕왕후 사망 후 1398년(태조7)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정경궁주 유씨

화의옹주 김씨 (?~1428) 

   김해의 관기 출신으로 이름은 칠점선이다. 1398년(태조7) 화의옹주로 봉해졌다.

찬덕 주씨

 

진안대군 이방우 (1354~1393) (모 신의왕후 한씨)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강원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1392년 진안군에 책봉되었고 1년 후 사망하였다.

영안대군 이방과 (1357~1419) (정종) (모 신의왕후 한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들이 죽임을 당하고 동생 이방원의 힘으로 왕세자 자리에 오른 후 왕위에 오른다.

익안대군 이방의 (1360~1404) (모 신의왕후 한씨)

   제1차 왕자의난과 제2차 왕자의난에서 아우 이방원을 보좌하였다.

회안대군 이방간 (1364~1421) (모 신의왕후 한씨)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에 책록되었다.

   형 정종이 적장자가 없자 왕위계승에 대한 야심으로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과 충돌하였으나 패하였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아들 의령군과 생포되어 토산현에 안치되었다.

정안대군 이방원 (1367~1422) (태종) (모 신의왕후 한씨)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은 형 정종을 왕위에 올린 후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받았다.

덕안대군 이방연 (모 신의왕후 한씨)

   1385년(우왕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박사가 되었으나 혼인하기 전에 사망하였다.

무안대군 이방번 (1381~1398) (모 신덕왕후 강씨)

   신덕왕후의 장남으로 세자로 내정되기도 하였으나 조준, 정도전 등 중신들이 "성격이 광망하고 경솔하다"고 반대하여 동생 이방석에게 세자자리를 뺏겼다. 제1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이 방번에게도 난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이후 죽임을 당했다.

의안대군 이방석 (1382~1398) (모 신덕왕후 강씨)

   태조 1년에 왕세자 책봉되어 조선의 첫 왕세자였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17살의 나이에 피살되었다.

 

경신공주 (?~1426) - 이거이의 장남 이백경과 혼인

경선공주 (?~1446 이후 사망)

경순공주 (?~1407) (모 신덕왕후 강씨)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편과 두 남동생이 죽고, 경순공주는 승려가 되었다.

숙신옹주 (?~1453) (모 화의옹주 김씨) - 당성군 홍해와 혼인

의령옹주 (?~1466) (모 찬덕 주씨) - 계천위 이등과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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