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조선역사

조선 7대왕 세조 이유의 여인과 후손

GoodFortune 2021. 10. 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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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7대 국왕

세조 이유

1417.11.02 ~ 1468.09.23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차남

4남1녀

 

재위기간

1455.06.24 ~ 1468.09.22 (13년 3개월)

 

 

수양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후 궁 밖에서 컸는데 세종의 즉위한 뒤에도 세조는 한동안 궁 밖에서 자랐는데 그가 태어났을 때 큰할아버지인 정종과 할아버지인 태종의 승하가 잇따르며 그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세조실록에 "어릴때 민간에서 자랐으므로 모든 어려움과 사실과 거짓을 자세히 일찍부터 겪어 알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1428년(세종10) 윤번의 딸 윤씨(정희왕후)와 혼인하였으며 1445년(세종27) 수양대군으로 개봉되었다. (진평대군 - 함평대군 - 진양대군 - 수양대군으로 개봉)

 

형 문종이 병으로 죽고,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 황보인 등 의정부 신하들이 조정을 잡게 되었으며 수양대군은 왕실에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1453년(단종1) 계유정난을 일으켜 아우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 1455년(단종3) 단종으로부터 명목상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생육신과 사육신의 반발과 사림 세력의 비판을 받았는데 사육신과 그 일족을 대량 숙청했다. 또한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와 금성대군을 탄핵하고 유배 보내고 영풍군, 한남군 또한 위리안치 시키는 등 자신을 지지 하지 않는 이복동생들을 제거했다.

 

세조는 후궁이 많지 않았는데 이는 정희왕후의 여장부 기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1453년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녀는 차남 예종이 즉위한 후 왕대비가 되었고 예종이 즉위 1년만에 병으로 승하하자 한명회와 결탁하여 둘째 손자 자을산군(성종)을 왕위에 올리며 1469년부터 1476년까지 7년간 대왕대비로 수렴청정하였다. 

예종이 죽었을때 그의 아들 원자(제안대군)이 있었으나 나이가 어렸고,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덕종)의 큰아들 월산대군도 있었지만 차남 자을산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자을산군의 장인이 한명회였던 것으로 보아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1457년 악몽을 꾸고 문종 비 현덕왕후 묘를 파헤쳐 폐서인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아들 덕종(의경세자)가 일찍 죽자 현덕왕후의 혼령이 사주한 것이라 착각하여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세조 말년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불교의 의지하다 귀의했다고 한다.

1468년(세조14) 건강이 악화되자 아들 왕세자(예종)에게 전위하고 다음날 승하하였다.

 

정의왕후 윤씨 (1418~1483)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

   조선 최초의 대왕대비로 손주인 성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하였다.

근빈 박씨 (1425~1504년 이후 사망) 

   1504년(연산군10) 이후 사망

폐소용 박씨 (?~1465)

 

의경세자 이장 (덕종) (1438~1457) (모 정희왕후 윤씨)

   조선 9대 국왕 성종의 생부로 성종6년 덕종으로 추촌되었다.

예종 이황 (1450~1469) (모 정희왕후 윤씨)

   조선 8대 국왕

의숙공주 (1441~1477) (모 정희왕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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