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고려역사

충목왕과 충정왕 덕녕공주 섭정시대

GoodFortune 2019. 8. 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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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목왕 (고려 29대 왕)

1337-1348

재위 1344-1348

 

충정왕 (고려 30대 왕)

1338-1352

재위 1348-1351

 

충목왕은 28대 왕 충혜왕과 원나라 덕녕공주(=정순숙의공주) 사이의 장남이다. 1337년 태어나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다가 충혜왕이 사망하자 8세에 원나라에 의해 즉위하였다. 1344년부터 1348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모후인 덕녕공주가 섭정하였다.

 

덕녕공주가 대신 정사를 맡아보며 전조의 폐정을 시정하였다. 권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진제도감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또한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충목왕은 재위 4년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혼인도 하지 못했기에 후사가 없었다.

 

고려 충목왕 가계도

 

 

충목왕에게 후사가 없었기에 왕위는 이복동생인 충정왕이 이었다. 충정왕은 충혜왕과 고려 출신 희비 윤씨의 서자였다. 1348년에서 1351년 재위하는 동안 적모 덕녕공주가 섭정을 하였다.

 

드라마 '신의' 충목왕과 덕녕공주

 

 

충목왕의 어머니 희비 윤씨는 파평 윤씨 찬성 윤계종의 딸로 고려 여인이었다. 충목왕은 2세 때 경창부원군에 봉군되었고, 7세에 부왕 충혜왕의 죽음을 보았다. 즉위 후 원나라 공주인 덕녕공주가 배후에서 섭정하려하자 희비 윤씨 및 윤계종의 친족들이 반발 시도를 하였다. 외척 윤시우와 배전 등이 세도를 형성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1350년(충목왕2) 왜구의 습격이 있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민심이 강릉대군에게로 쏠렸다. 충목왕에게 후사가 없어 충정왕과 함께 후계자 물망에 올랐었던 강릉대군(=공민왕)은 충혜왕의 동생이자 충목왕, 충정왕에게는 숙부가 된다. 

1351년(충목왕3) 윤택, 이승로 등은 원나라에 투서를 보내 '충정왕이 나이가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달라'고 원나라에 요청을 하였다. 충정왕은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이듬해 죽었다.

 

고려 충정왕 가계도

충정왕은 후궁에게서 서자 1명 왕제를 얻었는데, 그는 개성 왕씨 시중공파의 파조가 된다. 왕제는 고려사에는 보이지 않으나 개성 왕씨 족보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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