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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왕국의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GoodFortune 2022. 10. 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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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1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남 페드루 5세가 왕위에 오르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가 시작되었다.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는 1853년부터 군주제가 폐지되는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위를 이어갔다.

 

페드루 5세 - 루이스 1세 - 카롤루스 1세

 

 

페드루 5세

1837~1861 재위 1853~1861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남이다. 1853년 어머니 마리아 2세가 아이를 낳다 사망하여 포르투갈의 왕위에 올랐다. 1858년 슈테파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결혼했으나 자녀 없이 이듬해 사망했다. 페드루 5세는 남동생 주앙, 페르난두와 함께 콜레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왕위는 동생 루이스 1세에게 이어졌다.

 

 

루이스 1세

1838~1889 재위 1861~1889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차남이다. 1861년 형 페드루 5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당시 공화파와 왕당파 사이에서 포르투갈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사보이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딸 마리아 피아와 결혼해 2남을 낳았다. 당시 보기 드문 연애결혼이었으나 결혼 후 루이스 1세의 불륜으로 불화가 있었다.

 

 

카를루스 1세

1863~1908 재위 1889~1908

 

루이스 1세와 마리아 피아의 아들이다. 1883년 이탈리아, 영국, 독일을 여행하며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하려 했으나 영국의 압력으로 하지 못하였고, 이후 아멜리 오를레앙과 결혼했다.

1889년 아버지 루이스 1세 사망 후 왕위에 올랐다. 1890년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육로로 연결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려 했지만 영국의 간섭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영국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습은 군주제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포르투갈에서 공화주의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892년 경제 위기로 포르투갈은 국가 파산을 선언했고 1902년 두번째 파산 선언을 했다. 사회주의와 공화당 간의 대립, 군주제의 비판 등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1908년 여행을 가기 위해  코메르시우 광장을 지나던 중 공화당 운동가 부이사에 의해 암살당했다. 부이사는 카를로스를 향해 5발의 총을 쐈고 카를루스는 즉사하였으며 루이스 필리프 왕세자는 팔에 총을 맞아 20분 후 사망했다. 차남 마누엘 왕자도 부상을 입었다.

 

 

마누엘 2세

1889~1932 재위 1908~1910

 

카를루스 1세와 아멜리 오를레앙의 차남이다. 1908년 아버지 카를루스 1세가 암살당할때 왕세자인 루이스 필리프가 함께 사망하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1910년 10월 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퇴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 되었다.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녀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영국으로 망명한 마누엘은 애국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그를 다시 왕위에 올리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거절했다. 1932년 런던에서 폐부종으로 인한 질식 사망을 하였으며 포르투갈 정부는 국가적 장례식을 치뤄주었다. 후계는 미겔 1세의 손자 두아르트 누누가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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