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이힘이다/세계사

페르시아(이란) 제국 팔라비 왕조

GoodFortune 2022. 12. 1. 13:11
반응형

페르시아는 이란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이란을 가리키던 호칭으로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이란이라고 칭했다. 1935년 팔라비 왕조의 레자 샤가 국호를 이란 이라 공식적으로 재차 확인했다.

 

팔라비 왕조는 페르시아(이란)의 마지막 왕조이다.

카자릐 왕조 시기 군인이던 레자 칸(레자 샤 팔라비)이 19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1925년 왕위에 오르며 팔라비 왕조가 시작되었다.

 

팔라비 왕조는 레자 샤 팔라비와 그의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두 국왕이 있었으며 1979년 2월 11일 이란 혁명으로 퇴위하면서 이란의 군주제는 끝이 났다.

 

레자 샤 팔라비

1878~1944

재위 1925~1941

 

레자 칸은 1921년 쿠데타로 테헤란을 점령하고 1919년 체결된 영국-이란 협정을 무시하며 치외법권을 철폐시켰다. 1924~1925년 이란군 사령관 겸 총리가 되었으며 1925년 카자르 왕조 폐지에 의결하고 왕위에 올라 레자 샤가 되었다. 레자 샤는 교육 개혁을 실시하여 이란의 근대화에 노력했다. 테헤란 대학교를 설립하고 여성 해방을 결의하고 1936년 히잡 금지령을 내렸다.

1935년 국호를 이란 제국으로 통일하고 샤를 황제를 의미하는 샤한샤로 격상시켰다. 이란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지만 독재 성향이 강했기에 반발이 있기도 했다.

제 2차 세걔 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했지만 독일과 거래를 하고, 국내 독일인을 추방하는 것에 거절했다. 1940년 영국과 독일의 교전에서 영국은 독일이 이란의 유전을 차지하는 것을 우려해 소련과 함께 이란을 침공하여 이란에 주둔했다. 이 사건이 1941년 페르시아 침공이다. 레자 샤는 영국,소련의 압력으로 아들 모하마드 제라 팔리비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모리셔스 섬으로 망명하였으며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1944년 사망했다. 4명의 부인으로부터 11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두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장남이다.

레자 샤 팔라비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1919~1980

재위 1941~1979

이란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샤한샤(황제)로 38년간 군주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가 팔라비 왕조를 열고 왕이 되며 황태자가 되었다. 1941년 영국, 소련의 페르시아 침공으로 아버지 레자 샤가 퇴위하게 되며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팔라비 2세로 왕위에 올랐다. 

 1939년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이집트 국왕 푸아드 1세의 장녀 파우지아 빈트 푸아드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으나 1948년 이혼했고, 1951년 소라야 에스팥디아리-바크타이라와 재혼하였으나 불임을 이유로 1958년 다시 이혼했다. 1959년 파라 디바와 재혼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1남 1녀는 자살했다.(2001년 차녀 레일라 팔라비가 우울증으로 자살했으며 2011년 차남 알리 레자 팔라비는 미국에서 권총자살했다.)

팔라비는 1960년대부터 백색혁명을 통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토지개혁, 국영기업의 민영화, 여성 참정권의 확립과 아동결혼 금지 등을 통해 이란의 근대화를 추진했으며 친미노선을 추구하며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1941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세속적 무슬림이었던 팔라비는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들의 지지를 서서히 잃게 되었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심했다. 자신의 정보기관 SAVAK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였고 1978년 당시 이란의 정치범 수감자가 2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히잡 착용 금지와 사원의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으로 이슬람 율법자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하게 되었다. 1978년 초 학생들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고 무력 진압을 하였으나 시위는 거세져 갔다. 1979년 가족, 측근들과 함께 이집트로 망명했다.

1979년 호메이니가 권련을 잡고 총리로 임명되었고 국민투표로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팔라비는 황후와 미국으로 갔지만 미국 입국에 반발한 이란 대한생들은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팔라비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여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팔라비는 모로코, 미국, 멕시코, 파나마 등을 떠돌다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파리 팔라비 황후는 2009년 NHK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는데 프랑스에서 자선 활동을 하고 있었다.

후계자였던 장남 레자 팔라비는 현재도 팔라비 왕조의 복고를 주장하며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다. 아내 야스민 팔라비로부터 딸 셋을 두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