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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이힘이다 391

현대그룹 현대자동차 가계도 (정주영 정몽구 정몽준 정의선 가계도)

현대그룹의 창업주는 정주영(1915~2001)이다. 8남 3녀를 두어 아들들 간의 다툼이 심했고, 현재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그룹 등으로 분리되었다. 정주영(1915~2001) 1940년 초반 자동차 정비회사인 아도 서비스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현대자동차공업사, 현대토건사를 설립, 합병하여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교량, 도로 등을 복구하며 현대건설은 승승장구하였고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였다. 1971년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시멘트 등을 총괄한 현대그룹을 창립하고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1987년 현대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되었으며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

SK그룹 가계도 (최태원 최창원 가계도)

최종건 SK 초대 회장이자 창업주인 최종건은 8.15 광복 직전 일본인이 경영하던 선경직물공장 견습기사로 입사하였다. 6.25 이후 1953년 선경직물을 인수하여 SK그룹의 모태인 선경그룹을 창립하고 무역, 정유화학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며 동생 최종현이 회사를 이어받았다. 최종건은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사망하였는데 동생 최종현 회장도 폐암으로 68세에 사망하였으며 장남 최윤원 또한 폐암으로 49세에 사망했다. 3남 4녀를 두었고 차남 최재원은 현재 SK 주요직책에서 물러나있으며 3남 최창원은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종현 2대 회장 최종현은 1962년 선경직물 이사직을 맡으며 선경그룹의 경영을 시작했다. 1973..

삼성 신세계 CJ 가계도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정용진 삼성의 가계도)

이병철은 삼성그룹, CJ그룹, 산솔그룹, 중앙일보를 창업한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이다. 지금도 이병철의 후손들은 우리나라 굵직한 많은 기업을 이끌고 있다. 이병철은 부인 박두을로부터 3남 5녀를 두었으며 재혼한 구로다로부터 1남 1녀를 두어 4남 6녀의 자녀를 두었다. 1938년 29세에 30,000원의 자본금으로 대구 수동에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사업을 시작하며 삼성이 시작되었다. 1945년 한국 전쟁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1951년 부산에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하였고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969년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설립하였고, 1972년 제일합섬, 1974년 삼성석유화학, 삼성중공업을 설립하였다. 차남 이창희는 1967년 삼성그룹을 떠나..

포르투갈 왕국의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마리아 1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남 페드루 5세가 왕위에 오르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가 시작되었다.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는 1853년부터 군주제가 폐지되는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위를 이어갔다. 페드루 5세 1837~1861 재위 1853~1861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남이다. 1853년 어머니 마리아 2세가 아이를 낳다 사망하여 포르투갈의 왕위에 올랐다. 1858년 슈테파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결혼했으나 자녀 없이 이듬해 사망했다. 페드루 5세는 남동생 주앙, 페르난두와 함께 콜레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왕위는 동생 루이스 1세에게 이어졌다. 루이스 1세 1838~1889 재위 1861~1889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차남이다. 1861년 형 페..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조

1580년부터 1640년까지 약 80년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동군연합을 이루어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이 통치하였다. 포르투갈의 펠리페 1세(1580~1598), 펠리페 2세(1598~1621), 펠리페 3세(1621~1640)는 스페인에서는 각각 펠리페 2세,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가 된다. 164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동군연합이 해체되며 포르투갈은 독립하게 되었고 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4세로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이후 브라간사 왕조가 1853년까지 200년 넘는 시간동안 포르투갈을 통치했다. 주앙 4세 1604~1656 재위 1640~1656 브라간사 공작 테오도지오 2세과 스페인의 아나 데 벨라스코의 아들이다. 할머니 카타리나는 마누엘 1세의 손녀이자 두아르트 1세 기..

포르투갈 부르고뉴(보르고냐) 왕가와 아비스 왕가

포트투갈 왕국은 1139년부터 1910년까지 유럽에 존재한 왕국이다. 부르고뉴 왕가의 아폰수 1세가 레온 왕국으로부터 포르투갈을 독립시키며 초대 왕이 되었고 포르투갈 왕국이 시작되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부르고뉴 왕가 포르투갈 부르고뉴 왕가에서는 3명의 왕에 대한 기록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왕에 대한 기록은 찾게 되면 업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아폰수 1세 1109~1185 재위 1139~1185 레온 왕국으로부터 갈라시아 왕국의 남부 지역의 독립을 성취하며 포르투갈의 초대 왕이 되었다. 부르고뉴의 엔히크(앙리)와 알폰소 6세(레옹, 갈리시아, 카스티야의 왕)의 서녀 테레사의 아들이다. 1095년 알폰소 6세는 프랑스 로베르 2세의 증손자인 부르..

프랑스 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필리프

프랑스 부르봉 왕조(1589~1830) 왕조를 이어 프랑스 왕가를 통치한 가문은 오를레앙 가문이다. 나폴레옹 시대(1804~1815) 를 제외하더라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200년 이상 지속되며 8명의 프랑스 국왕이 프랑스를 통치했다. 부르봉 왕조 샤를 10세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퇴위당하고 시민 투표로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르며 1848년 프랑스 혁명 사이에 18년간 프랑스의 국왕 자리를 지켰다. 루이 필리프 1세 1773~1850 재위 1830~1848 루이 필리프 조셉 오를레앙와 루이즈 앙리에트 마리 아데라이드 드 부르봉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루이 필리프 조셉이 '평등한 필리프' 였으며 루이 필리프 1세는 '평등한 자의 아들'로 불렸다.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다. 17..

나폴레옹 업적 가계도 후손들

나폴레옹 1771~1821 프랑스 황제 재위 1804~1814 우리가 편히 부르는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 1세를 말한다. 카를로 보나파르트와 레티차의 아들로 8명의 자녀 중 둘째였다. 보나파르트 가문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하급 귀족 가문으로 조상대대로 법조인을 많이 배출한 법률가 가문이었다. 아버지 카롤로 보나파르트 또한 변호사이며 귀족회의 의원이었다. 9살이 되던 해 형 조제프와 함께 프랑스 오탱에 있는 수도원 부속 종교학교에 입학했다. 4개월 후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항하였고 1784년 파리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나폴레옹은 4년 교육과정을 11개월만에 조기졸업하였다고 한다. 이후 포병장교 임용시험에 합격하였 1785년 포병장교로 부임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봉..

네덜란드 오라녜나사우 왕가 빌럼알렉산더르 가계도

빌럼 1세 1772~1843 재위 1815~1840 네덜란드 연합 왕국 오라녜나사우 왕가의 초대 국왕으로 오라녜 공작 빌럼 5세와 프로이센의 빌헬미나의 아들이다. 1795년 프랑스가 네덜란드 공화국을 침공하여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809년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오스트리아군에 복무하였고 이후 1812년 프로이센의 궁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다. 1813년 네덜란드인들이 프랑스 통치에 저항하자 빌럼은 네덜란드 공화국의 왕자가 되었고 1815년 네덜란드 연합 왕국(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초대 국왕으로 올랐다. 왕위에 오른 빌럼 1세는 은행을 설립하는 등 경제 부흥을 위해 힘썼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동등한 대표권이 주어지자 벨기에인들을 네덜란드와의 연합에 반대하였다. 벨기에의 자유주의와 가톨..

오스트리아 황실의 합스부르크 가문

180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황제 즉위에 맞서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높이고 오스트리아 황제로 프란츠 1세가 즉위하며 오스트리아 황실이 시작되었다. 프란츠 1세(신성로마 제국 프란츠 2세) 1768~1835 재위 1804~1835 레오폴트 2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들이다. 1792년 아버지가 사망하며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프랑스에 대항했으며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자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높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 왕들에게도 황제로 즉위하라고 권유했지만 무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프랑스에 대패하며 1806년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신성 로마제국이 해체되며 오스트리아의 황제 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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